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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대역 주변의 밤거리 풍경

★소재지/서울시 광진구 화양동과 자양동 일대

★걸은날자/2021년 12월 18일

 

1/건대거리는 서울특별시 광진구 건국대학교를 중심으로 발달한 상업 지역으로 서울 동부권의 대표 번화가다.

 

건대 맛의 거리, 로데오 패션 거리, 양꼬치 거리로 크게 이루어져 있으며, 서울 지하철 2호선과 7호선의 환승역으로 교통이 편리하다.

 

근처에 뚝섬유원지와 어린이대공원이 있고, 잠실과 강남과도 가까우며, 10분 거리에 동서울터미널이 위치해 있다.

 

과거에 비해 2010년대 들어 크게 성장한 번화가이며, 현재는 서울의 대학 번화가들 중 홍대거리와 함께 양대 최대의 대학 번화가로 여겨진다.

 

 

2/건대입구역(Konkuk University station, 建大入口驛)은 서울특별시 광진구 화양동에 있는 서울 지하철 2호선과 서울 지하철 7호선의 환승역이다.

 

2호선 개통 당시의 역명은 화양역(華陽驛)이었으나 인근에 건국대학교가 있어 역명이 개정되었다.

 

서울 지하철 7호선은 이 역부터 수락산역까지 지하 구간이다. 서울 지하철 7호선은 심야에 2편성이 주박한다.

 

 

 

 

 

 

 

▲ 유튜브 영상/2021년 12월20일 업로드

 

 

 

 

 

 

건대역 사거리

 

 

 

건대 맛의거리

 

 

 

 로데오거리

 

 

 

조양시장 근처(양꼬치거리 근처)

 

 

 

보다 더 자세한 사항은 위의 유튜브 동영상을 참고하세요. 본인이 직접 제작한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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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중앙탑)공원 

★소재지/충북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11

 

★산책일자/2021년 12월10일 금요일 흐리고 비

 

★입장요금/ 무료-주차비 무료

 

 

忠州 塔坪里 七層石塔(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공원) -일명 중앙탑/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의 남한강 옆 강가 언덕 위에 위치한, 전체 높이 14.5m의 화강암제 칠층석탑으로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후반 경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본 석탑은 일명 중앙탑(中央塔)이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신라 제38대 원성왕 때 통일신라 전국토를 기준으로 남북으로 사람이 동시에 출발하여 같은 보폭으로 걸어 만난 국토의 중앙지점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지금도 남한의 정중앙이 충북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정확하게 위치를 파악한 듯 싶다.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1962년 국보 제6호로 지정되었다.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현재 남아있는 신라시대 석탑 중 크기가 가장 크며 7층의 지붕돌이 균형미를 갖추고 14.5m 높이로 솟아 있다. 탑평리 칠층석탑은 세월의 흐름에 의해 기단과 몸돌에 금이 가거나 약간 깨진 부분이 있는 등 소실된 부분이 있으나, 대체적으로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하지만 본 석탑도 현전하는 대다수의 다른 탑들처럼 꼭대기 지붕돌 위의 머리장식은 이미 사라지고 없으며, 머리장식 받침 정도가 남아 있다.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2층으로 된 기단 위에 7층의 몸돌과 지붕돌로 구성되어 있다. 본 석탑은 워낙 크기도 크고 높이도 높은지라 보는 사람에게 웅장하다는 인상을 주는데, 탑 1층의 몸돌은 크게 해놨고, 위로 올라 갈수록 몸돌과 지붕돌의 크기가 차츰 줄어들어 비례감이 느껴진다.

 

다만, 하단부에 비해 높이가 너무 높아서 탑의 전체적인 균형감과 안정감은 덜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본 석탑은 신라의 다른 거탑들처럼 기단부와 각 층의 몸돌을 여러 개의 돌들로 조립해서 만들었다. 하지만 6층의 몸돌부터는 여러개의 돌을 짜맞춘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그리고 기단의 네 면과 각 층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형 장식을 양각으로 새겨놨다. 한편 지붕돌의 하단에는 5단으로 이루어진 역계단형 받침 장식이 있으며 지붕돌의 각 모서리는 위를 향하게 들려 있는데 이는 경쾌한 인상을 준다고 평가된다.

 

또한 지붕돌을 자세히 보면 각 모서리에 구멍이 뚫려있는데, 이는 풍경을 매달았던 흔적이라고 한다. 이상에서 드러나는 탑의 건축방식과 장식들로 미루어봤을 때, 본 석탑의 축조연대는 아마도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의 현재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지만, 일제강점기인 1917년 당시에는 탑이 기울고 있다고 판단하여 전면적인 해체수리를 했던 바가 있다.

 

이때 탑의 기단과 6층 몸돌에서 청동거울, 나무함, 은제사리함 등의 사리장엄구 유물이 발견됐으며, 이 사리장엄구 가운데 청동거울 두 점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여서, 아마도 신라때 탑을 건립한 이후 고려에 들어서 다시 한 번 사리장엄구의 봉안이 있었으리라고 추정한다.

 

그런데 일제가 수리를 한 것 까지는 좋은데, 기단과 탑신부에 부재들을 어긋나게 끼워넣는 등 복원을 잘못하는 바람에 탑의 원형이 다소 변형되어 버렸다고 한다.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이 서있는 곳에는 본래 큰 사찰이 있던 것으로 보이지만, 이와 관련해 지금까지 전해지는 기록이 전무하여 더 자세한 정보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충주는 현대의 광역시와 비슷한 통일신라의 5소경 중 하나인 중원경일 정도로 당시 전국에서 손꼽히는 중요 도시였기 때문에, 이만한 탑을 경내에 두었고 지금은 이름이 잊혀진 이 절은 당시 중원경의 신앙을 대표하는 사원이었을 것이고 규모와 역할도 상당히 컸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다.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대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그 자체의 형태와 아름다움이 잘 남아 있으며, 현전하는 통일신라의 가장 거대한 석탑이라는 점, 당대 석탑 양식을 잘 보여주면서도 신라 중원 지방의 문화를 대표할만한 작품이라는 점 등의 가치를 인정 받아 일찍이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6호로 지정되었다.

 

 

 

 

 

 

 

▲ 유튜브 동영상/2021년 12월13일 업로드

 

 

 

 

 

 

▲ 정문옆에 주차장이 있습니다

 

 

 

공원 안내도

 

 

 

 

중앙탑 의상실

 

 

 

중앙탑 사진관

 

 

 

중앙탑에서 노래비

 

 

 

충주 중앙탑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현재 남아있는 신라시대 석탑 중 크기가 가장 크며 7층의 지붕돌이 균형미를 갖추고 14.5m 높이로 솟아 있다. 탑평리 칠층석탑은 세월의 흐름에 의해 기단과 몸돌에 금이 가거나 약간 깨진 부분이 있는 등 소실된 부분이 있으나, 대체적으로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중앙탑 탄금호 무지개길

 

 

 

야경이 좋은 중앙탑 탄금호 무지개길은 공사중입니다

 

 

 

호반의 대화

 

 

 

 금수강산

 

 

 

 신전

 

 

 

 명상

 

 

 

 숲

 

 

 

중원의 꿈

 

 

 

 충주박물관

 

 

 

박물관 앞뜰

 

 

 

충주박물관 내부

 

 

 

 

독립유공자 공적비

 

 

독립유공자 공적비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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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 덕주사와 미륵대원지 

★소재지/충북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125

★산책일자/2021년 12월10일 금요일 흐리고 비

 

★입장요금/ 무료-주차비 무료

 

 

★덕주사/

1.덕주사는 신라 진평왕 9년(서기 586년)에 창건 되었다. 창건 당시에는 월형산 월악사 였으나 신라 경순왕이 천년사직을 고려 왕건에서 손국한뒤 경순왕의제일녀 였던 덕주공주가 높이 15m의 거암에 마애미륵불(보물406호)을 조성하고 신라의 재건을 염원하였으나 일생을 마친 후 산의 이름을 월악산으로 절이름을 덕주사로 개명하여 오늘날 까지 이르고 있다.

 

덕주사는 상덕주사와 하덕주사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상덕주사는 동편 계곡으로 1.5키로를 올라간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데 지금은 마애미륵불 우공탑 삼층석탑 그리고 극락전과 요사터만 남아있다.

 

상덕주사는 1951년 12월 전화로 소실 되었으며 석축만 옛날 규모를 알려주고 있다. 하덕주사는 어는때 절이 소실 되었는지 알수 없으나 절 입구에 있는 남근석을 보면 이곳이 남아선호 신앙이 깃들었던 원시 신앙지 였음을 알수있으며 3m나 되는 탑 기단석 부도 연꽃문양 석등 와편등이 절터 였음을 증명한다.

 

현 대웅보전은 옛 하덕주사가 수재의 위험이 있어 1996년 성일화상이 새로이 절터를 마련 전면 5칸 측면 3칸 52평 외 5포 내 9포의 건물양식으로 창건했다.

 

전각안에는 법신 보신 화신의 삼존불이 모셔져 있는데 중앙이 법신불로 부처님의 진신이며 자성으로 청정법계의 진여인 실상의 법을 시현한 자성불이다.

 

오른편 부처님은 보신불로 과거 원력수행의 한량없는 과보로 나타난 만덕이 원만한 불신이며 화신불 또는 응화신 이라고도 하는 왼편부처님은 중생을 위해 갖가지 모습으로 변화해 구제하는 불신이다.(전각 내부 후면 1536불 봉안)   

 

 

2.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587년(진평왕 9)에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창건자 및 창건연대는 미상이다. 다만, 신라의 마지막 공주 덕주공주(德周公主)가 마의태자(麻衣太子)와 함께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 마애불이 있는 이곳에 머물러 절을 세우고, 금강산으로 떠난 마의태자를 그리며 여생을 보냈다는 전설이 전한다.

 

원래의 덕주사는 보물 제406호인 덕주사마애불(德周寺磨崖佛) 앞에 있었는데, 1951년 군의 작전상 이유로 소각하였다. 창건 당시의 절을 상덕주사, 지금의 절을 하덕주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상덕주사는 지금의 덕주사에서 1.7㎞ 지점에 있었는데, 1951년 무렵 까지만 해도 고색창연한 기도사찰이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다.

 

상덕주사는 1622년(광해군 15)에 중수되었음이 옛 극락전 자리에서 발견된 명문기와를 통하여 확인되었다.

 

지금의 덕주사에서는 1206년(희종 2)에 조성된 금구(禁口)가 발견되어 고려시대 덕주사의 정황을 짐작할 수 있다. 1963년에 중창되었고, 1970년과 1985년에 각각 중건하였다.

 

덕주사에는 어느 때 것인지 확실하지 않은 우탑(牛塔) 1기와 조선시대의 부도(浮屠) 4기가 있으며, 우탑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이 절의 승려들이 건물이 협소하여 부속건물을 지으려고 걱정할 때 어디선가 소가 나타나서 재목을 실어 날랐다. 소가 가는 곳을 따라가 보니 현재의 마애불 밑에 서므로 그곳에다 부속건물을 지었고, 소는 재목을 모두 실어다 놓은 다음 그 자리에서 죽었으므로 죽은 자리에 우탑을 세웠다고 한다.

 

또, 부도에는 환적당(幻寂堂)·부유당(浮遊堂)·용곡당(龍谷堂)·홍파당(洪波堂)이라고 음각된 명문이 기록되어 있다.

 

1985년 중창 당시에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는 한수면 역리에 있던 고려시대 석조 약사여래 입상을 덕주사로 옮겨 봉안하였다.

 

이밖에도 덕주사 전방 약 2㎞ 지점에 있는 빈 신사 터에는 보물 제94호로 지정된 사자빈신사지석탑(獅子頻迅寺址石塔)이 있으며, 덕주사 주변의 덕주계곡·송계계곡(松界溪谷)·월악계곡(月岳溪谷) 등은 풍치가 좋다.

 

 

 

★덕주산성/이 산성은 월악산의 남쪽 기슭에 있는 상덕주사를 중심으로 하여 그 외각을 여러 겹으로 둘러쌓은 석축 산성이다.

 

상덕주사의 외곽을 둘러 싼 상성(내성으로 제1곽) 상하덕주사를 감싼 중성(제2곽 일명 동문주변)과 그 외곽으로 하성(제 3곽)이 있으며 송계 계곡인 월천의 남쪽을 막아 쌓은 남문과 북쪽의 북문을 이루는 관문형식의 외곽성(제4곽)등 네 겹으로 이루어진 매우 큰 규모의 석성이다.

 

고려 고종때 몽고의 칩입시 월악대왕의 가호와 월악신사 등과 관련한 항몽의 유적지이기도 하며 조선 중종 때 내성을 축성하고 임진왜란때에도 역할을 하였으며 조선말기에는 명성황후와의 관련이 있는등 역사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대표적인 사적이다. 최근에 남문의 문루를복원하였으며 성벽도 일부 보수하고 있다. 

 

 

 

★미륵대원지/사적 제317호.

하늘재[寒喧嶺]·계립재[鷄立嶺]·새재[鳥嶺]에 둘러싸인 험준한 산골짜기 북쪽 기슭에 북향하여 조성된 석굴을 주불전으로 하는 절터이다. 창건 연대나 내력, 사원의 정확한 명칭을 알 수 없으나,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짐작된다.

 

석굴은 거대한 돌을 쌓은 위로 목조로 세운 자취가 있으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발굴 당시 ‘미륵당초’라고 새겨진 기와가 나와,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의 사원으로 추정된다.

 

현재,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보물 제96호),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보물 제95호), 석등, 당간지주 등 중요한 석조 문화재들이 남아있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가 망한 것을 슬퍼하며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 누이인 덕주공주가 월악산에 덕주사를 지어 남쪽을 바라보는 마애불을 만들자 태자는 북향의 석굴을 지어 덕주사를 바라보게 하였다고 한다.

 

1977년 1차 발굴조사 당시, ‘明昌三年金堂改蓋瓦(명창삼년김당개개와)’, ‘彌勒堂(미륵당)’, ‘彌勒堂寺(미륵당사)’, ‘院主(원주)’ 등의 명문와(銘文瓦)가 출토되어 미륵을 모시는 사찰이자 원(院)을 겸하는 사찰이며, 1192년(고려 명종 22) 금당의 기와를 새로 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석굴과 전실의 목구조가 소실된 것은 13세기이며, 이후 곧 복원되었고 조선 초기에 크게 수리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다시 소실되었고 18세기에 들어 수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언제 폐사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1936년 발생한 큰 수해로 법등(法燈)이 끊어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2011년 7월 28일자로 ‘중원 미륵리사지’에서 ‘충주 미륵대원지’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해발 378m의 고지대에 위치한 미륵대원지에는 길이 9.8m, 너비 10.75m, 높이 6m의 인공으로 쌓은 석굴 형식의 불전이 있다. 석굴 중앙에는 대좌를 두어 석불입상을 봉안하고, 측면과 후면 석벽의 중앙은 감실(龕室)처럼 만들어 작은 불상들이 부조되었다.

 

석굴 상부는 목조 건물로 지어 천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절터에는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 삼층석탑, 석등, 귀부(龜趺), 당간지주, 불상대좌 등의 석조 문화재가 있다. 양식적으로 보면 고려 초인 10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지형이 북쪽으로 갈수록 낮아져 사원은 북향을 하고 있으며, 사원 전체가 계단식으로 조성되어 있다.1977·1978·1982년 3차례에 걸쳐 시행된 발굴조사 당시 출토된 여러 명문 기와와 건물지 발굴을 통해 사찰의 성격이 밝혀졌다.

 

특히 ‘미륵대원’이라고 한 것은 동쪽에 역원(驛院)이 있었기 때문인데, 말을 묶어 둔 마방시설, 여행자 숙소 등 역원의 건물터도 함께 발굴되어 사찰과 역원의 기능을 합친 고려 초기의 중요 유적지로 평가되고 있다.

 

미륵대원지는 『삼국유사』권1, 왕력(王曆)의 아달라니질금(阿達羅尼叱今)조에 “계립령금미륵대원동령시야(鷄立嶺今彌勒大院東嶺是也)”의 미륵대원으로 추정된다. 미륵대원의 존폐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한 시기인 고려 충렬왕대까지는 존속되고 있었던 듯하다.

 

 

 

 

 

유튜브 영상2021년 12월11일 업로드

 

 

 

 

 

 

 

 

 

 

덕주사 개념도

 

 

 

▲ 덕주사 입구로 걸어 들어갑니다. 차를 가지고 덕주사로 갈수도 있습니다. 주차장도 비교적 넓습니다

 

 

 

우측 덕주사 자연관찰로로 갑니다

 

 

 

좌측계곡에 수경대가 있습니다

 

 

 

자연관찰로가 끝나고 도로로 나옵니다

 

 

 

덕주산성 동문과 그옆계곡이 학소대 입니다

 

 

 

 덕주산성

 

 

 

덕주산성의 안내문

 

 

 

뒤에서 본 덕주산성 동문

 

 

 

학소대(우)와 용마산(좌)

 

 

 

약 1키로를 걸어 덕주사에 도착했습니다

 

 

 

덕주사 안내문

 

 

 

덕주사 범종

 

 

 

덕주상에서 잘보이는 용마산(말뫼산)

 

 

 

덕주사 대웅보전

 

 

 

남근석(월악산이 음기가 강한 산이라 그 기운을 누루고 음양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남근석을 설치한것으로 추정

 

 

   

남근석에 대한 안내문

 

 

 

대불정주범자비(인도의 옛 문자인 범자가 새겨진 비석이다)

 

 

 

덕주사 산신각과 안내문

 

 

 

덕주사 석조약사여래입상

 

 

 

덕주사 바로 옆에는 월악산 덕주탐방지원센타가 있습니다. 월악산 영봉을 등산하는 시발점입니다. 영봉 4.9키로 마애불 1.6키로 입니다

 

 

 

월악산 영봉석과 월악산에 대한 안내비석

 

 

 

바위 위에서 자라는 느티나무(주차장)

 

 

 

지금의 덕주사에서 약 1.6키로 지점에 있는 덕주사마애불/(보물 406호) 동국여지승람이나 전설에 따르면 마의태자 누이 덕주공주가 망국의 한을 품고 이곳에 들어왔다가 자기의 형상을 마애불로 조성하였다고 한다.

 

 

 

이제 하산길로 갑니다. 하산길에 바라본 덕주사 동문과 덕주산성

 

 

 

덕주사 입구 도로가에 있는 덕주골 노래비

 

 

 

덕주사 입구에서 도로로 400여미터 가면 덕주산성 남문이 나옵니다

 

 

 

덕주산성 남문

 

 

★덕주산성/이 산성은 월악산의 남쪽 기슭에 있는 상덕주사를 중심으로 하여 그 외각을 여러 겹으로 둘러쌓은 석축 산성이다.

 

상덕주사의 외곽을 둘러 싼 상성(내성으로 제1곽) 상하덕주사를 감싼 중성(제2곽 일명 동문주변)과 그 외곽으로 하성(제 3곽)이 있으며 송계 계곡인 월천의 남쪽을 막아 쌓은 남문과 북쪽의 북문을 이루는 관문형식의 외곽성(제4곽)등 네 겹으로 이루어진 매우 큰 규모의 석성이다.

 

고려 고종때 몽고의 칩입시 월악대왕의 가호와 월악신사 등과 관련한 항몽의 유적지이기도 하며 조선 중종 때 내성을 축성하고 임진왜란때에도 역할을 하였으며 조선말기에는 명성황후와의 관련이 있는등 역사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대표적인 사적이다. 최근에 남문의 문루를복원하였으며 성벽도 일부 보수하고 있다. 

 

 

 

덕주산성 남문에 대한 안내문

 

 

 

남문앞 계곡가에 있는 망폭대와 안내문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덕주사에서 직선거리로 약 4.5키로 떨어진 충주 미륵대원지로 왔습니다

 

 

 충주 미륵대원지 개념도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좌측의 미륵세계사 방향으로 갑니다

 

 

 

 미륵세계사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은 2022년까지 공사중입니다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보물 제 96호)의 안내문

 

 

 

공사중이라 석조여래입상의 옛 모습을 사진으로 볼수있습니다.

 

 

 

미륵대원지 오층석탑과 석조여래입상

 

 

 

미륵대원지 사각석등

 

 

 

미륵대원지 원터

 

 

 

미륵대원지 당간지주

 

 

 

조금더 자세한 정보를 보시려면 위의 유튜브 동영상을 참고하세요. 본인이 직접 제작한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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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대 공원 산책

★소재지/충북 충주시 칠금동 산 1-1

★산책일자/2021년 12월07일 화요일 맑음

 

★입장요금/ 무료-주차비 무료

 

전화문의/ 043-848-2246

 

 

★탄금대(명승 제42호)/

신라 진흥왕 때인 552년 악성(樂聖)으로 불린 우륵(于勒)은 가야국의 멸망을 예견하고 신라에 귀화했다. 진흥왕은 우륵을 반기며 국원(충주)에 거주하게 했다. 그리고 신라의 청년인 법지, 계곡, 만덕을 선발해 악(樂)을 배우게 하고 우륵을 보좌하도록 했다. 이런 연유로 우륵은 만년에 멸망한 가야국을 떠나 충주에 우거했다.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한 나지막한 산은 풍광이 매우 아름답다. 우륵은 이곳의 풍치를 탐미하여 산 정상에 있는 너럭바위에 앉아 가야금을 탔다. 이곳이 바로 우륵이 금(琴)을 탄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탄금대(彈琴臺)’다.

 

우륵이 연주하는 가야금의 미묘한 소리는 사람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했고 곧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탄금대 주변에는 지금도 가야금과 관련된 지명이 남아 있다. 칠곡리(칠금동), 금뇌리(금능리), 청금리(청금정) 등의 마을 명칭은 모두 가야금과 관련된 것이다.

탄금대는 충주시 근처에 있는 대문산(108m)의 정상을 지칭한다. 산 아래로 남한강이 흐르는데 강변에 기암절벽이 형성되어 있고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어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절벽을 따라 강물이 휘감아도는 탄금대는 남한강과 너른 들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강줄기의 모습은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벼랑에 위치한 열두대에서 가장 잘 보인다. 정상부에는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탄금정이 있고, 동쪽으로는 계명산과 남산이 솟아 있으며 아래로는 충주 시가지와 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다.

 

탄금대는 임진왜란의 참혹한 역사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당시 도순변사였던 신립(申砬)은 8,000여 명의 군사와 함께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왜군에 맞서 탄금대에서 격전을 치렀다.

 

그는 배수진을 치고 물밀듯이 밀려오는 왜군에 대항해 싸웠으나 전세가 불리하여 결국 패하고 말았다. 신립은 이곳 탄금대에서 남한강에 투신하여 장렬하게 최후를 마쳤다.

 

탄금대 북쪽 절벽에는 열두대가 위치하고 있다. 열두대의 지명에 관한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바위의 층계가 12개이기 때문에 열두대라 하기도 하고, 절벽 아래 물이 12번 돌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교전 중 달구어진 화살을 식히느라 12번을 오르내렸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열두대 아래는 깊은 소가 있는데 이를 양진명소라 한다. 이곳에 뱃길을 관장하는 수신(水神)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선주, 선박 상인들은 양진명소에서 안전과 번영을 빌었다고 한다.

탄금대에는 전쟁과 관련된 또 다른 유적이 있다. 정상 주위에 남아 있는 오래된 토성이 바로 그것이다. 이 토성은 4세기 중후반에 탄금대를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던 철을 생산하는 세력에 의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백제와 관련된 유물만이 출토되어 고구려나 신라가 이 지역으로 진출하기 전에 백제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탄금대는 충주의 시내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명소로서 이미 오래전부터 일반인들의 탐방은 물론 도시공원으로도 이용되어 왔다. 그래서 탄금대에는 공원 시설이 다양하게 조성되어 있다.

 

또한 전쟁의 역사성과 관련된 궁도장을 비롯해 우륵의 가야금과 관련된 공원 시설, 충혼탑, 야외음악당, 특히 공원의 효과적인 활용을 위한 공원도로도 많이 개설되어 있다.

 

오랫동안 도시공원으로 이용되었던 탄금대는 뒤늦게 국가지정 명승으로 그 장소적 가치가 인정되었다. 명승으로서의 가치를 높이고 시민들의 공원으로서도 잘 활용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충주시의 명소인 탄금대는 나라를 잃고 정복국의 신민이 되어 변방으로 올 수밖에 없었던 악성 우륵의 가야금 소리가 한의 울림으로 퍼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또한 문경새재를 넘어온 왜군에 맞서 배수진을 치고 최후의 결전을 벌였던 장수 신립의 함성이 메아리쳐 우렁차게 들려오는 듯하다. 지난날 커다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자리했던 명승 탄금대는 국가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역사적인 경승지다.

 

 

 

 

 

▲ 유튜브 영상/2021년 12월9일 업로드

 

 

 

 

 

 

자연과 인간사이

 

 

 

충혼탑(광복 이후에 순국한 충주 중원지역의 애국 순국 선열들의 넋을 추모하고자 1955년에 건설. 현재 1930위의 위패가 모셔져 있음. 매월 6월6일 현충일에 추도식이 열림.

 

 

 

신립장군과 팔천고혼 위령탑(임진왜란시 이곳에서 순국한 충장공 신립장군과 팔천 군사들의 추모탑)

 

 

 

감자꽃 노래비/이곳 칠금동에서 태어나신 항일투사 동천 권태응 선생의 시비

 

 

 

탄금대기 비석/충주의 지리와 역사 인물 자연환경을 예찬하는 내용의 비문

 

 

 

탄금대기 비문

 

 

 

남한강과 달천이 만난다는 탄금대

 

 

 

 탄금정

 

 

 

열두대의 바위/

 

 

 

신립장군순국지지/신립장군이 이곳에서 팔천 군사와 함께 순국하셨다는 내용

 

 

 

열두대 앞의 용섬

 

 

 

열두대 앞의 남한강과 멀리 보이는 탄금대교

 

 

 

열두대의 바위/명칭유래

1.바위의 층계가 12개라는 설   2. 절벽아래의 강물이 12번 돌아서 라는 설

3. 임진왜란 당시 달구어진 화살을 식히느라 12번 오르낙거려서 라는 설

 

 

 

우륵선생의 탄금대 비

 

 

 

탄금정 옆길로 가면 대나무 숲과 대흥사와 순국비가 있습니다

 

 

 

충장공 신립장군 순절비/배수진을 치고 최후까지 전투에 임했던 신립의 전공을 기리는 비각이다.

 

 

 

 대흥사

 

 

 

웨지52 카페

 

 

 

한바퀴 돌고 나가는 길

 

 

 

무술공원/충주에 있는 세계무술공원은 남한강변을 접하고 있습니다.  세계무술 공원에서는 1988년부터충주 세계무술 축제가 해마다 열리고 있는데 세계 여러나라들이 무술 축제에참여하고 있습니다.

 

많은 참여국이 다양한 무기와 공예품을 기증하여 우리나라 전통무예와 무기류를 합하여 2011년 충주 세계 무술박물관을 개관했습니다. 넓게 조성된 공원을 둘러보고 세계무술박물관을 둘러보게 되어있습니다

 

 

 

 

무술공원은 탄금대 만큼 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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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순봉 출렁다리 관광

★소재지/충북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 77-16

★산책일자/2021년 12월03일 금요일 맑음

 

★입장요금/2021년 12월 현재 무료이나 2022년 4월부터 3천원 징수예정

 

전화문의/ 043-641-6738

★입장시간/하절기 09시~18시  동절기 09시~17시

 

★주차요금은 무료 

 

★옥순봉 출렁다리/

1/충북 제천시에서 공사비 85억원을 들여 2021년 10월 22일 완공한 옥순봉 출렁다리는 길이 222미터에 폭이 1.5미터의 무주탑 출렁다리로 성인 1286명이 동시에 건널수 있는 하중으로 건설되었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약 400미터의 옥순봉 생태 탐방로 덱크길이 연결된다. 현재는 이 출렁다리로 옥순봉 등산이 불가능하지만 차후 등산로가 개설되면 등산과 관광이 동시에 가능해져 충주호의 전망과 옥순봉 구담봉의 절경이 합쳐져 환상적이 관광명소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2/충북 제천시 청풍호를 가로 질러 옥순봉을 연결하는 '제천 옥순봉 출렁다리'가 22일 개통식을 열었다.이날 행사에는 이상천 제천시장, 배동만 제천시의회 의장, 시의원, 엄태영 국회의원과 관계자 등 50여 명이 참석해 출렁다리 개통을 축하했다.

 

개장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당분간 휴일 없이 운영할 계획이며, 이용요금은 내년 3월까지는 무료, 그해 4월1일부터는 요금 3,000원을 받고 '제천화폐 모아'로 2,000원을 환급할 예정이다.

 

 

1985년 충주댐 건설로 단절된 수산면 괴곡리 자연마을 옛길 복원을 통한 주민들의 오랜 숙원을 해소하고 명승 제48호 옥순봉을 연결하는 명품탐방로 조성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추진된 '제천 옥순봉 출렁다리'는, 2015년 중부내륙광역관광개발사업 기본계획에 따라 사업을 시작, 작년 6월 착수하여 1년 4개월여 만에 그 모습을 선보이게 됐다.

 

이 시설은 국도비를 포함한 총 85억 원의 예산을 들여 조성한 길이 222m, 폭 1.5m로 조성되는 무주탑방식의 출렁다리로, 탐방로 408m, 관광편익시설(화장실,소매점,매포소 등), 주차장과 주차장 연결데크 등과 함께 조성됐다.

 

시 관계자는 "청풍호일원의 압도적 경관과 함께 옥순봉을 가장 가까이에서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옥순봉 출렁다리는, 지역의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부각될 것으로 확신한다"며, "지속적인 상품성 보강을 통해 전국적인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시 전지역에 관광인프라를 탄탄히 구축해 제천 관광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 수 있도록 노력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유튜브 동영상/2021년 12월5일 업로드

 

 

 

옥순봉 출렁다리 개념도

 

 

 

옥순봉 출렁다리 주차장에 주차하니 출렁다리 입구가 보입니다

 

 

 

네비에 옥순봉 출렁다리를 치면 쉽게 오실수 있습니다. 주차료는 없습니다

 

 

 

입구를 지나 출렁다리로 갑니다

 

 

 

옥순봉과 출렁다리가 보입니다. 청풍호를 가로지릅니다

 

 

 

출렁다리 입구에 있는 옥순대교

 

 

 

출렁다리로 들어섭니다

 

 

 

좌측으로 보이는 옥순봉(해발 286미터) /아직 출렁다리를 건너 올라가는 등산로가 정식 개설 되지 않아서 아쉬움을 주고 있습니다

 

 

 

뒤돌아 본 모습

 

 

 

중간에 유리로 되어있습니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안내도가 있습니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약 408미터의 옥순봉 생태 탐방로가 덱크길로 조성되어있습니다

 

 

 

400여미터를 따라오니 생태탐방로가 끝납니다

 

 

 

다시 출렁다리를 건넙니다

 

 

 

우측으로는 금수산이 잘보입니다

 

 

 

 옥순대교

 

 

 

구경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돌아왔습니다

 

 

 

내년 4월부터는 유료로 전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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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의정부시 밤거리 모습

★걸은날자/2021년 11월23일 화요일 맑음

 

★경기도 의정부시 /

경기도 중앙부 서울시의 북쪽에 있는 시이다. 6·25전쟁 후 군사도시로 발달한 지역이다. 계속된 인구유입과 도시화에 따라 1963년 시로 승격되어 양주군에서 분리되었다.

 

1·2차 산업은 미미하나 각종 서비스업은 활발한 편이다. 도봉산·수락산은 산세가 웅장하여 의정부시의 대표 관광지이다. 도봉산 일부는 북한산국립공원에 속한다. 면적 81.54㎢이고 15개동이 있고 인구는 2020년 기준 460,390명이다.

 

의정부시의 명칭은 둔야면 의정부리로부터 시작하였다. 둔야면(1938년에 양주면으로 개칭) 의정부리에 1911년 개통한 경원선의 철도역인 의정부역이 생긴 이후 이 역을 중심으로 의정부 도심이 점차 형성되었다.

 

이후 행정구역명과는 별개로 철도역의 이름을 따라 의정부라는 지명이 널리 쓰였다. 1922년에 주내면 유양리에 있었던 양주군청이 옮겨오면서 양주군의 행정중심지가 되었다.

 

1942년 10월에 의정부읍이라는 이름으로 승격하면서 지역의 정식 명칭으로 굳어졌다. 둔야(芚夜, 둔배미)와 의정부리라는 지명은 조선 시대 최고 의결기관인 의정부의 둔전(屯田)이 설치되어 유래하였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 유튜브 영상/2021년 11월 26일 업로드

 

 

 

의정부역 사거리(신시가지)

 

 

 

 의정부역앞

 

 

 

의정부역(구시가지)

 

 

 

안중근 의사 동상(의정부역 광장)

 

 

 

문화의 거리의 조선 태조 이성계 동상

 

 

 

행복한 문화의거리(옛 중앙로)

 

 

 

 로데오거리

 

 

 

의정부의 명물 부대찌개 거리

 

 

 

이곳이 원조라는 오뎅식당/

 

허기숙 할머니의 대한민국 최초 부대찌개 1호점

 

오뎅식당은 1960년 부터 지금의 위정부 부대찌개 거리에 위치한 본점 자리에서 오뎅을 파는 포장마차로 처음 시작하였습니다.

 

식당 근처 미군부대에 근무하던 사람들이 가져다 주는 햄 소시지 베이컨등으로 볶음을 만들어 판매하던 중 밥과 어울리는 국물을 찾는 단골 손님들이 늘자 기존의 볶음 재료에 김치와 장을 더해 찌개를 만들어 지금의 부대찌개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오뎅식당이란 상호명은 부대찌개의 원조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그당시 부대찌개가 탄생한 포장마차 시절의 이름 그대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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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읍 일대의 밤거리 모습(경기도 가평군 읍내리와 대곡리일대)

★걸은날자/2021년 11월19일 금요일 흐림

 

★경기도 가평군 /

대한민국 경기도 동북부에 있는 군. 서울과 춘천 간의 교통요지이며, 군전체의 자연경관이 수려하여 1일관광지역으로 인기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군사작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접근성이 다소 떨어진다.

 

가평읍·북면·상면·설악면·청평면·조정면 대한민국 경기도 동북부에 있는 군.

서울과 춘천 간의 교통요지이며 군전체의 자연경관이 수려하여 1일관광지역으로 인기가 있는 곳이다.

 

가평읍·북면·상면·설악면·청평면·조종면 등 1개읍 5개면 61개리가 있다(법정리 기준, 행정리 기준 126개리). 군청소재지는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석봉로이다.면적 843.6㎢, 인구 62,495(2020)

 

 

가평읍(加平邑)/

군의 중앙에 위치한 읍. 면적 145㎢, 인구 1만 9933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읍내리이다. 고려시대에서 조선 후기까지 그 소속이 강원도와 경기도로 번갈아 바뀌는 변화를 겪었다.

 

 

본래 포천군에 속해 있다가 1896년에 가평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군내면(郡內面) 10개 리에다 내사면(內四面) 6개 리를 통합 군내면과 기존 10개 리를 6개 리로 통폐합한 남면(南面) 등 2개 면 지역에 해당하였다.

 

1942년청평댐 담수로 인해 남면이 수몰되자 이화·산유·복장·금대리를 병합, 가평면으로 개칭되었다. 1973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광주산맥의 연봉인 계관산·불기산(佛岐山, 600m) 등을 구불구불 흐르는 가평천과 북한강이 합류하는 곳에 산간분지가 만들어져 있다.

 

읍의 서북쪽은 매봉(929m)·대금산(大金山, 704m) 등의 산지를 이루며 가평천유역과 청평에 이르는 통곡에는 많은 산간분지의 형성으로 취락이 조성되었다.

 

특히 가평천과 통곡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읍내리·대곡리 등의 시가지는 군내의 최대 규모이다. 경지율은 10%가 조금 넘고 논농사에 비해 밭농사가 약간 우세하나 영세농가가 대부분이다.

 

한우 돼지의 사육과 양봉이 비교적 활발하고 밤과 잣의 산출이 많으며 표고버섯의 집산지이다. 제조업체 수가 군내에서 가장 많으며 개곡리에서 규석을 생산한다.

 

교통은 경춘국도와 함께 상색역과 가평역을 통과하는 경춘선이 가로지른다. 이 밖에 가평천을 따라 363번 지방도가 읍을 종단하며 읍의 남서쪽에서 북동 방향으로 46번 국도도 통과한다.

 

문화유적은 읍내리에 가평향교 하색리에 이방실장군묘가 있다. 관광지로 승안리에 아홉군데 비경을 자랑하는 용추구곡(龍湫九曲)을 비롯하여 경반리의 수락폭포와 경반계곡 등은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읍내(邑內)·대곡(垈谷)·달전(達田)·하색(下色)·상색(上色)·두밀(杜密)·경반(鏡盤)·승안(升安)·마장(馬場)·개곡(開谷)·이화(梨花)·산유(山柳)·복장(福長)·금대(金垈) 등 14개 리가 있다.

 

 

 

 

 

▲ 유튜브 영상/2021년 11월 21일 업로드

 

 

 

 

 

▲ 가평철길공원

 

 

 

 

가평읍 오리나무길

 

 

 

 가평군청앞

 

 

 

가평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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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일대의 밤거리 모습(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서초동일대)

★걸은날자/2021년 11월15일 월요일 맑음

 

★강남역 일대/

강남역(江南驛)은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과 서초구 서초동에 걸쳐 있는 서울 지하철 2호선과 신분당선의 전철역이다. 현재 신분당선의 종착역이나, 강남 - 신사 연장선이 공사 중이다.

 

수도권 전철 신분당선은 이 역부터 광교중앙역까지 지하 구간이다. 수도권 전철 신분당선 심야에 2편성이 주박한다.

 

테헤란로와 강남대로가 만나는 곳에 있으며, 강남구와 서초구의 경계에 있다. 대신 동편의 역삼역에 비해 지대가 낮아서 2011년 집중호우 때 침수되기도 했다.

 

2011년 10월 28일 신분당선이 개통하면서 환승역이 되었으며, 신분당선 강남역의 출구가 뱅뱅사거리 방향으로 4개 추가되어 기존의 3번~8번 출구가 7번~12번 출구로 바뀌었다.

 

이 역은 주변이 모두 고층빌딩에 번화가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규모의 지하 상권이 조성되어 있다. 2호선 일일 승하차 인원은 20만 명을 넘어 19년 연속 '이용객이 가장 많은 지하철역'으로 선정되었으며, 신분당선의 일일 승하차 인원은 2호선의 절반 수준이다.

 

강남역 주변은 강남 지역에 있어서 교통의 핵심인 곳이다. 강남대로를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테헤란로가 뻗어 있어 잠실 방향과 이어지며, 서쪽으로는 사당 방면으로 연결된다.

 

교보타워 사거리에서 좌측으로는 고속터미널과 이어져 노량진 및 서부 서울로 연결되며, 그대로 북쪽으로는 한남대교를 거쳐 강북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양재를 거쳐 분당 등의 신도시와 성남시 등 수도권으로 연결된다.

 

많은 유동인구가 강남역으로 모이는 이유는 강남역 부근이 만남을 위한 약속장소로 적합하기 때문이다. 각종 모임이나 행사 또는 개인적인 만남을 갖기에 좋은 지역적, 상권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평일에는 주로 저녁 시간대, 주말의 경우는 낮부터 강남역 10, 11번 출구, 롯데시네마 앞(구,시티극장), 지오다노 매장 앞 등에서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편리한 교통과 다수의 패션관련 매장, 극장, 대형서점 등 소비를 하기 좋은 이러한 환경이 거리가 먼 지역의 소비자들까지 강남역으로 모이게 하고 있다.

 

강남구에서는 내ㆍ외국인 관광객에게 종합관광서비스는 물론, 강남구의 우수 인프라인 의료와 한류에 대하여 보고,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체험형 관광거점시설인 강남관광정보센터를 건립ㆍ운영하고 있으며,

 

강남관광정보센터는 서울과 강남의 주요 관광명소를 안내하고 관광객 편의시설을 갖춘 ‘종합관광안내센터’와 강남구 특화 병원과 진료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체험할 수 있는 ‘메디컬투어센터’, 한류 스타를 활용하여 다양한 한류체험이 가능한 ‘한류체험관’으로 구성되어있다.

 

 

 

 

 

 

▲유튜브 영상/2021년11월16일 업로드

 

 

 

 

▲강남역 사거리

 

 

 

▲강남역 사거리

 

 

 

▲강남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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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동의 밤거리 모습(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

★걸은날자/2021년 11월12일 금요일 맑음

 

★압구정동/

국내에서 손꼽히는 부촌중 한 곳이며, 주민들의 평균 생활수준 역시 국내에서 최상위권에 속하는 지역이다.

 

압구정동의 동명은 이곳에 조선 세조 때의 권신 한명회가 지은 압구정이라는 정자가 있던 데서 유래되었다.

 

압구정은 한명회의 호로 일찍이 중국 송나라의 재상이었던 한기가 만년에 정계에서 물러나 한가롭게 갈매기와 친하게 지내면서 머물던 그의 서재 이름을 압구정이라 했던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나 이 정자는 1481년에 왕명으로 철거되었다. 한명회가 항명을 하는 바람에 화가 난 성종이 부숴버렸다.

 

 

압구정동은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압구정리였으며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와 동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한 경기도 구역획정 때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압구정리로 존속되었다.

 

광복 후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한 서울특별시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어 압구정동이 되었으며 동일자 서울특별시조례 제276호로 신설된 성동구 언주출장소 관할이 되었다.

 

1973년 7월 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780호로 신설된 성동구 영동출장소 관할로 옮겨졌다가 1975년 10월 1일에는 대통령령 제7816호로 성동구에서 분리 신설된 강남구에 속하여 오늘에 이른다.

 

 

국내에서 평균 생활 수준이 최상위권에 속하는 강남구 내에서도 삼성동, 도곡동과 더불어 가장 생활 수준이 높은 동이다.

 

백화점으로는 압구정역 6번 출구에 위치한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압구정로데오역에 위치한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이 있다.

 

압구정로데오역 5번, 6번 출구 옆에는 199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압구정 로데오거리가 있다.

 

로데오거리 주변에 랄프로렌, 에르메스, 마크제이콥스, SK-II 등의 명품 플래그십 스토어들이 있다.

 

미술관 및 박물관으로는 313 아트프로젝트와 호림아트센터가 도산공원 근처에, 스페이스C(코리아나 화장박물관 및 미술관)가 언주로변에 있다.

 

영화관으로는 압구정역 3번 출구에 위치한 CGV 압구정과 학동사거리에 위치한 CGV 청담씨네시티(舊 씨네시티)가 있다. 80석 규모의 소규모 극장인 압구정 스폰지하우스(舊 씨어터 2.0)도 있었지만 2009년 문을 닫았다.

 

강남을지병원 사거리 옆에 호텔 선샤인이 있는데, 강남의 유명 나이트클럽 중 하나였던 보스나이트가 있었다. LF 본사도 언주로변에 위치한다.

 

성형외과가 많기로 유명하다. 논현로 부근 상업지역에 성형외과가 밀집해있는데 옆동네인 신사동과 청담동 역시 그 수 측면에서는 뒤지지 않지만 대표적 이미지로 따지자면 여기가 가장 유명하다.

 

요즘엔 내국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 성형관광 산업도 적극 유치하기 때문에 간판에는 외국어로도 여러 설명이 써있는 경우가 많다. 덕분에 그 근처는 중국인 고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 유튜브 동영상/2021년 11월14일 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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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주팔봉 트렉킹

★소재지/충북 충주시 살미면 토계리

★걸은 날/2021년 11월5일 금요일 맑음

 

 

★수주팔봉은 충주시 살미면 토계리와 대소원면 문주리의 경계로 해발 459미터의 두룽산에 자락에 있는 바위 암봉으로 정상에서 남서쪽 달천으로 능선이 뻗어가면서 8개의 바위 봉우리가 울퉁불퉁 솟아있는데 이를 수주 팔봉이라 부른다.  

 

 

 

수주팔봉은 서쪽 대소원면 문주리 팔봉마을에서 달천 건너 동쪽 산을 바라볼때 정상에서 강기슭까지 여덟개의 봉우리가 떠우른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팔봉마을은 안동의 하회나 예천 회령포 처럼 곡류천으로 물길이 아름답고 마을 안쪽의 팔봉서원은 4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달천은 속리산에서 발원하여 괴산군 지역을 흐를때는 청천 괴강으로 불리고 충주로 흘러오면서 단천이라 하였다.

 

물맛이 좋다고 하여 달래 또는 감천이라 하였고 수달이 많아 달강이라고도 불렸다. 예로 부터 달천의 물맛은 조선 최고로 꼽았다.

 

성현의 용재총화에서는 우리나라 물맛은 충주 달천수가 으뜸이며 오대사 우통수가 두번째 속리산 삼타수가 세번째로 좋다고 전해진다.

 

수주팔봉은 출렁다리를 건너 두룽산에 올라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제일 아름답다.

 

강을 따라 송곳바위 중바위 칼바위 등이 병풍을 이루고 한눈에 들어오는 팔봉 마을이 한폭의 동양화를 펼쳐 놓은 듯하다.

 

살미면 토계리에서 흘러드는 오가천의 물길과 달천 두물이 합쳐지며 운치를 더해주는 팔봉폭포는 1963년 농지 개량사업을 위해 칼바위를 절단해 만들어졌다.

 

수주팔봉은 물과 산 바위가 조화를 이루고 수직절벽의 절경을 뿜내며 시민유원지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상 안내문에서-

 

 

 

유튜브 영상/2021 11/8 업로드

 

 

 

 

 

▲ 수주팔봉 개념도

 

 

 

길이 48미터 폭 1.7미터의 출렁다리(건너갈때 약간 출렁거림)

 

 

 

이곳에서 드라마 빈센조를 촬영하였다함

 

 

 

두룽산 산행안내도

 

 

 

 

수주팔봉 출렁다리

 

 

 

 두룽산

 

 

 

출렁다리옆의 정자/은사 이명수옹 선행기 비와 같이 있슴

 

 

 

대소원면 문주리 팔봉마을 앞 달천 강변의 야영지에 차박을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1963년 농지개량 사업을 위해 이바위를 절단해서 칼바위폭포(팔봉폭포)가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즉 팔봉폭포는 인공폭포입니다

 

 

 

가벼운 산행으로 중턱의 전망대로 올라갑니다

 

 

 

전망대에 올랐습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달천과 팔봉마을과 수주팔봉 유원지

 

 

 

 두룽산

 

 

 

팔봉마을을 휘감아 도는 달천(곡류천)모습

 

 

 

대소원면 수주팔봉 유원지에서 바라본 모습

 

 

 

달천가에 많은 차들이 차박을 하고 있습니다.

 

보다 더 자세한 사항은 위의 유튜브 영상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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