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7일 강원 홍천일대 추진중이던 한중문화타운에 반대하는 주민 모습
강원도 춘천시와 홍천군에 들어설 예정이었던 '한중문화타운'(일명 차이나타운) 사업이 최근 무산됐다. 한 달 새 67만명이 넘는 국민이 반대 청원에 서명하는 등 폭발적인 반대 여론을 고려한 조치다.
지난 4일 사업 주체인 코오롱글로벌과 중국 인민망 등 4개 기관은 공동으로 진행 불가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곧이어 정동진과 경기 포천에서도 또 다른 차이나타운 조성 논란이 불거졌다. 이와 관련해 지자체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역주민들이 납득을 못하고 있어 여파는 쉬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 해묵은 반중 정서가 최고조로 치닫는 가운데 반중을 넘어 혐중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은 한국과 인적·물적 교류가 많은 최대 교역국이자 정치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이웃 나라다.
그러나 자유, 인권, 민주주의 같은 핵심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데다 주변국들에 도를 넘어선 강압적 행태를 보이고 있어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의견이 분분하다.
국민 86% 반중 실감…日·美·유럽은 물론 동남아서도 비등
지난해 동아시아연구원(EAI) 발표에 따르면 중국은 한반도 주변 4강 중 최근 5년 새 한국인들의 적대감이 가장 큰 폭(16.1%→40.1%) 늘어난 한편, 우호감은 가장 큰 폭(50%→20.4%)으로 줄어든 나라였다.
또한 지난달 매경이코노미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 86%가 "최근 한국 사회에서 반중 감정이 커지고 있다"고 답했다. 국민 10명 중 8~9명이 높아진 반중 정서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반중 정서 고조 현상은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중국과 역사, 영토 문제로 한국 이상 대립해온 일본에서도 중국에 대한 일반 국민의 감정 악화는 수치로 확인된다.
일본 민간 비영리단체 겐론(言論)NPO 조사에 따르면 중국에 대한 인상이 "좋다"고 답한 일본인 비율은 1년 새 5%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중국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다"고 답한 비율은 5%포인트 늘었다. 같은 시기 미국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도 미주·유럽 등 12개국 중 8개국(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스웨덴 이탈리아 캐나다 호주)의 반중 정서가 조사 이래 최고치로 나타났다.
中팽창주의 주변국 자극…한국은 역사·문화 동북공정 가장 큰 이유
▲ 이외에 한국의 반중 정서를 자극하는 원인은 부동산 등 투기자본 침투, 저자세로 일관하는 정부의 외교정책 등이 꼽혔다
최근 세계 각국에서 중국에 대한 인식이 악화된 원인은 공통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피해와 중국 당국의 부적절한 대응이 지적된다.
하지만 대부분 주변국들에선 중국의 팽창주의로 격화된 영토 분쟁 등 정치경제적 대립이 더 큰 이유로 꼽힌다. 남중국해에서 필리핀과 베트남, 동중국해에서 일본과 빚고 있는 마찰이 그 예다.
실제로 겐론NPO 여론조사에서 일본인들은 대중 인식 악화의 이유로 센카쿠(조어도) 분쟁지에 대한 공세를 들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들은 "중국이 홍콩, 대만을 넘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등 분쟁지까지 장악력을 키우고 있다"며 중국의 호전적 대외 행보를 '전랑(戰狼·늑대전사)외교'라고 칭하기도 했다.
▲ 중국 최대 포탈 바이두에 삼계탕을 검색하면 "고대 광둥식 국물 요리로, 중국에서 전해져 한국에서 궁중요리로 자리잡았다"는 설명이 나온다
국내에서의 상황은 어떨까. 매경이코노미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가장 많은 76%가 "한국의 모든 문화와 역사를 중국의 일부"라고 우기는 행태를 반중 이유로 꼽았다.
김치를 비롯해 한복 등 한국 고유 문화자산을 비롯해 윤동주, 손흥민 등 한국 유명인의 뿌리가 중국이라는 일련의 주장이 큰 반감을 사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발(發) 역사와 문화 변조 행위에 이어 가장 많이 지목된 건 미세먼지와 황사로 인한 피해(60%)였다.
이 밖에 코로나19 사태 책임론(46%), 국내 기업에 대한 기술 탈취(23%), 부동산 등 투기자본의 국내 침투(16%), 그리고 저자세로 일관하는 정부의 외교정책(14.7%) 순으로 반중 정서를 자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중 현상 장기화되나…경제의존도 큰 한국 고민 깊어질 듯
▲ 현재 한국의 대 중국 수출비중은 2위 미국과 3위 베트남을 합친것 보다 많다
중국발 문화·역사 침탈 조짐은 한국인들에게 분명 반중의 명분이 되고 있다. 수직적 중화 질서의 추구와 주변국과의 마찰에 대한 보복도 세계적 반중 정서를 키웠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상당 기간 계속되고 심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반중이 걷히려면 중국의 대외정책 노선이 수정돼야 하는데, 그럴 여지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진영과 중국 간 전략적 경쟁 구도는 경제, 군사 안보에서 인권, 민주주의 같은 가치 분야까지 확대되고 있다"며 "양 진영 간 시각차가 좁혀지지 않고 대립과 반감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재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중국은 소프트파워가 경제성장을 못 좇아가는 상황"이라며 "만약 문화공정을 앞세워 한국 콘텐츠를 흡수하는 전략을 유지한다면 반중 현상은 계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무조건적 배척과 혐오도 사대적 친중만큼 바람직하지 않고 무엇보다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현재 한국에 중국은 압도적 규모의 최대 교역 파트너이자 200억달러가 넘는 흑자를 안겨주는 나라기 때문이다.
북한 문제에 가장 큰 지렛대를 가진 인접국이기도 하다. 협력할 수 있는 분야는 적극 협력해야만 하는 이유다.
특히 기업들에 중국은 포기하기 어려운 시장이다. 한재진 연구위원은 "아직도 중국은 기업들에 개척하고 개방해야 할 열리지 않은 공간이 많다"며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이분법적 논리보다는 정부가 그런 부분을 적극 창출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여러모로 쉽지 않은 이웃 중국과의 관계. 정부의 정책 기조인 '안미경중'도 이미 유효기간이 지났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어떻게 관리해야 하고 무엇이 가장 국익에 부합하는 길일지 외교당국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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