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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 덕주사와 미륵대원지 

★소재지/충북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125

★산책일자/2021년 12월10일 금요일 흐리고 비

 

★입장요금/ 무료-주차비 무료

 

 

★덕주사/

1.덕주사는 신라 진평왕 9년(서기 586년)에 창건 되었다. 창건 당시에는 월형산 월악사 였으나 신라 경순왕이 천년사직을 고려 왕건에서 손국한뒤 경순왕의제일녀 였던 덕주공주가 높이 15m의 거암에 마애미륵불(보물406호)을 조성하고 신라의 재건을 염원하였으나 일생을 마친 후 산의 이름을 월악산으로 절이름을 덕주사로 개명하여 오늘날 까지 이르고 있다.

 

덕주사는 상덕주사와 하덕주사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상덕주사는 동편 계곡으로 1.5키로를 올라간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데 지금은 마애미륵불 우공탑 삼층석탑 그리고 극락전과 요사터만 남아있다.

 

상덕주사는 1951년 12월 전화로 소실 되었으며 석축만 옛날 규모를 알려주고 있다. 하덕주사는 어는때 절이 소실 되었는지 알수 없으나 절 입구에 있는 남근석을 보면 이곳이 남아선호 신앙이 깃들었던 원시 신앙지 였음을 알수있으며 3m나 되는 탑 기단석 부도 연꽃문양 석등 와편등이 절터 였음을 증명한다.

 

현 대웅보전은 옛 하덕주사가 수재의 위험이 있어 1996년 성일화상이 새로이 절터를 마련 전면 5칸 측면 3칸 52평 외 5포 내 9포의 건물양식으로 창건했다.

 

전각안에는 법신 보신 화신의 삼존불이 모셔져 있는데 중앙이 법신불로 부처님의 진신이며 자성으로 청정법계의 진여인 실상의 법을 시현한 자성불이다.

 

오른편 부처님은 보신불로 과거 원력수행의 한량없는 과보로 나타난 만덕이 원만한 불신이며 화신불 또는 응화신 이라고도 하는 왼편부처님은 중생을 위해 갖가지 모습으로 변화해 구제하는 불신이다.(전각 내부 후면 1536불 봉안)   

 

 

2.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587년(진평왕 9)에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창건자 및 창건연대는 미상이다. 다만, 신라의 마지막 공주 덕주공주(德周公主)가 마의태자(麻衣太子)와 함께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 마애불이 있는 이곳에 머물러 절을 세우고, 금강산으로 떠난 마의태자를 그리며 여생을 보냈다는 전설이 전한다.

 

원래의 덕주사는 보물 제406호인 덕주사마애불(德周寺磨崖佛) 앞에 있었는데, 1951년 군의 작전상 이유로 소각하였다. 창건 당시의 절을 상덕주사, 지금의 절을 하덕주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상덕주사는 지금의 덕주사에서 1.7㎞ 지점에 있었는데, 1951년 무렵 까지만 해도 고색창연한 기도사찰이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다.

 

상덕주사는 1622년(광해군 15)에 중수되었음이 옛 극락전 자리에서 발견된 명문기와를 통하여 확인되었다.

 

지금의 덕주사에서는 1206년(희종 2)에 조성된 금구(禁口)가 발견되어 고려시대 덕주사의 정황을 짐작할 수 있다. 1963년에 중창되었고, 1970년과 1985년에 각각 중건하였다.

 

덕주사에는 어느 때 것인지 확실하지 않은 우탑(牛塔) 1기와 조선시대의 부도(浮屠) 4기가 있으며, 우탑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이 절의 승려들이 건물이 협소하여 부속건물을 지으려고 걱정할 때 어디선가 소가 나타나서 재목을 실어 날랐다. 소가 가는 곳을 따라가 보니 현재의 마애불 밑에 서므로 그곳에다 부속건물을 지었고, 소는 재목을 모두 실어다 놓은 다음 그 자리에서 죽었으므로 죽은 자리에 우탑을 세웠다고 한다.

 

또, 부도에는 환적당(幻寂堂)·부유당(浮遊堂)·용곡당(龍谷堂)·홍파당(洪波堂)이라고 음각된 명문이 기록되어 있다.

 

1985년 중창 당시에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는 한수면 역리에 있던 고려시대 석조 약사여래 입상을 덕주사로 옮겨 봉안하였다.

 

이밖에도 덕주사 전방 약 2㎞ 지점에 있는 빈 신사 터에는 보물 제94호로 지정된 사자빈신사지석탑(獅子頻迅寺址石塔)이 있으며, 덕주사 주변의 덕주계곡·송계계곡(松界溪谷)·월악계곡(月岳溪谷) 등은 풍치가 좋다.

 

 

 

★덕주산성/이 산성은 월악산의 남쪽 기슭에 있는 상덕주사를 중심으로 하여 그 외각을 여러 겹으로 둘러쌓은 석축 산성이다.

 

상덕주사의 외곽을 둘러 싼 상성(내성으로 제1곽) 상하덕주사를 감싼 중성(제2곽 일명 동문주변)과 그 외곽으로 하성(제 3곽)이 있으며 송계 계곡인 월천의 남쪽을 막아 쌓은 남문과 북쪽의 북문을 이루는 관문형식의 외곽성(제4곽)등 네 겹으로 이루어진 매우 큰 규모의 석성이다.

 

고려 고종때 몽고의 칩입시 월악대왕의 가호와 월악신사 등과 관련한 항몽의 유적지이기도 하며 조선 중종 때 내성을 축성하고 임진왜란때에도 역할을 하였으며 조선말기에는 명성황후와의 관련이 있는등 역사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대표적인 사적이다. 최근에 남문의 문루를복원하였으며 성벽도 일부 보수하고 있다. 

 

 

 

★미륵대원지/사적 제317호.

하늘재[寒喧嶺]·계립재[鷄立嶺]·새재[鳥嶺]에 둘러싸인 험준한 산골짜기 북쪽 기슭에 북향하여 조성된 석굴을 주불전으로 하는 절터이다. 창건 연대나 내력, 사원의 정확한 명칭을 알 수 없으나,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짐작된다.

 

석굴은 거대한 돌을 쌓은 위로 목조로 세운 자취가 있으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발굴 당시 ‘미륵당초’라고 새겨진 기와가 나와,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의 사원으로 추정된다.

 

현재,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보물 제96호),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보물 제95호), 석등, 당간지주 등 중요한 석조 문화재들이 남아있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가 망한 것을 슬퍼하며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 누이인 덕주공주가 월악산에 덕주사를 지어 남쪽을 바라보는 마애불을 만들자 태자는 북향의 석굴을 지어 덕주사를 바라보게 하였다고 한다.

 

1977년 1차 발굴조사 당시, ‘明昌三年金堂改蓋瓦(명창삼년김당개개와)’, ‘彌勒堂(미륵당)’, ‘彌勒堂寺(미륵당사)’, ‘院主(원주)’ 등의 명문와(銘文瓦)가 출토되어 미륵을 모시는 사찰이자 원(院)을 겸하는 사찰이며, 1192년(고려 명종 22) 금당의 기와를 새로 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석굴과 전실의 목구조가 소실된 것은 13세기이며, 이후 곧 복원되었고 조선 초기에 크게 수리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다시 소실되었고 18세기에 들어 수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언제 폐사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1936년 발생한 큰 수해로 법등(法燈)이 끊어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2011년 7월 28일자로 ‘중원 미륵리사지’에서 ‘충주 미륵대원지’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해발 378m의 고지대에 위치한 미륵대원지에는 길이 9.8m, 너비 10.75m, 높이 6m의 인공으로 쌓은 석굴 형식의 불전이 있다. 석굴 중앙에는 대좌를 두어 석불입상을 봉안하고, 측면과 후면 석벽의 중앙은 감실(龕室)처럼 만들어 작은 불상들이 부조되었다.

 

석굴 상부는 목조 건물로 지어 천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절터에는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 삼층석탑, 석등, 귀부(龜趺), 당간지주, 불상대좌 등의 석조 문화재가 있다. 양식적으로 보면 고려 초인 10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지형이 북쪽으로 갈수록 낮아져 사원은 북향을 하고 있으며, 사원 전체가 계단식으로 조성되어 있다.1977·1978·1982년 3차례에 걸쳐 시행된 발굴조사 당시 출토된 여러 명문 기와와 건물지 발굴을 통해 사찰의 성격이 밝혀졌다.

 

특히 ‘미륵대원’이라고 한 것은 동쪽에 역원(驛院)이 있었기 때문인데, 말을 묶어 둔 마방시설, 여행자 숙소 등 역원의 건물터도 함께 발굴되어 사찰과 역원의 기능을 합친 고려 초기의 중요 유적지로 평가되고 있다.

 

미륵대원지는 『삼국유사』권1, 왕력(王曆)의 아달라니질금(阿達羅尼叱今)조에 “계립령금미륵대원동령시야(鷄立嶺今彌勒大院東嶺是也)”의 미륵대원으로 추정된다. 미륵대원의 존폐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한 시기인 고려 충렬왕대까지는 존속되고 있었던 듯하다.

 

 

 

 

 

유튜브 영상2021년 12월11일 업로드

 

 

 

 

 

 

 

 

 

 

덕주사 개념도

 

 

 

▲ 덕주사 입구로 걸어 들어갑니다. 차를 가지고 덕주사로 갈수도 있습니다. 주차장도 비교적 넓습니다

 

 

 

우측 덕주사 자연관찰로로 갑니다

 

 

 

좌측계곡에 수경대가 있습니다

 

 

 

자연관찰로가 끝나고 도로로 나옵니다

 

 

 

덕주산성 동문과 그옆계곡이 학소대 입니다

 

 

 

 덕주산성

 

 

 

덕주산성의 안내문

 

 

 

뒤에서 본 덕주산성 동문

 

 

 

학소대(우)와 용마산(좌)

 

 

 

약 1키로를 걸어 덕주사에 도착했습니다

 

 

 

덕주사 안내문

 

 

 

덕주사 범종

 

 

 

덕주상에서 잘보이는 용마산(말뫼산)

 

 

 

덕주사 대웅보전

 

 

 

남근석(월악산이 음기가 강한 산이라 그 기운을 누루고 음양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남근석을 설치한것으로 추정

 

 

   

남근석에 대한 안내문

 

 

 

대불정주범자비(인도의 옛 문자인 범자가 새겨진 비석이다)

 

 

 

덕주사 산신각과 안내문

 

 

 

덕주사 석조약사여래입상

 

 

 

덕주사 바로 옆에는 월악산 덕주탐방지원센타가 있습니다. 월악산 영봉을 등산하는 시발점입니다. 영봉 4.9키로 마애불 1.6키로 입니다

 

 

 

월악산 영봉석과 월악산에 대한 안내비석

 

 

 

바위 위에서 자라는 느티나무(주차장)

 

 

 

지금의 덕주사에서 약 1.6키로 지점에 있는 덕주사마애불/(보물 406호) 동국여지승람이나 전설에 따르면 마의태자 누이 덕주공주가 망국의 한을 품고 이곳에 들어왔다가 자기의 형상을 마애불로 조성하였다고 한다.

 

 

 

이제 하산길로 갑니다. 하산길에 바라본 덕주사 동문과 덕주산성

 

 

 

덕주사 입구 도로가에 있는 덕주골 노래비

 

 

 

덕주사 입구에서 도로로 400여미터 가면 덕주산성 남문이 나옵니다

 

 

 

덕주산성 남문

 

 

★덕주산성/이 산성은 월악산의 남쪽 기슭에 있는 상덕주사를 중심으로 하여 그 외각을 여러 겹으로 둘러쌓은 석축 산성이다.

 

상덕주사의 외곽을 둘러 싼 상성(내성으로 제1곽) 상하덕주사를 감싼 중성(제2곽 일명 동문주변)과 그 외곽으로 하성(제 3곽)이 있으며 송계 계곡인 월천의 남쪽을 막아 쌓은 남문과 북쪽의 북문을 이루는 관문형식의 외곽성(제4곽)등 네 겹으로 이루어진 매우 큰 규모의 석성이다.

 

고려 고종때 몽고의 칩입시 월악대왕의 가호와 월악신사 등과 관련한 항몽의 유적지이기도 하며 조선 중종 때 내성을 축성하고 임진왜란때에도 역할을 하였으며 조선말기에는 명성황후와의 관련이 있는등 역사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대표적인 사적이다. 최근에 남문의 문루를복원하였으며 성벽도 일부 보수하고 있다. 

 

 

 

덕주산성 남문에 대한 안내문

 

 

 

남문앞 계곡가에 있는 망폭대와 안내문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덕주사에서 직선거리로 약 4.5키로 떨어진 충주 미륵대원지로 왔습니다

 

 

 충주 미륵대원지 개념도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좌측의 미륵세계사 방향으로 갑니다

 

 

 

 미륵세계사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은 2022년까지 공사중입니다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보물 제 96호)의 안내문

 

 

 

공사중이라 석조여래입상의 옛 모습을 사진으로 볼수있습니다.

 

 

 

미륵대원지 오층석탑과 석조여래입상

 

 

 

미륵대원지 사각석등

 

 

 

미륵대원지 원터

 

 

 

미륵대원지 당간지주

 

 

 

조금더 자세한 정보를 보시려면 위의 유튜브 동영상을 참고하세요. 본인이 직접 제작한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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