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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악산과 나와의 만남 그 세번째 이야기
1985년 8월 20일
주룩주룩
쏟아지는 비를 뚫고 원주 시내버스는 금대리 버스 종점에 나를 덩그러니 내려 놓는다. 잠시 비를 피해있던 나는 빗줄기가 좀 가늘어짐을 틈타
텐트까지 집어 넣어 약간 묵직한 중형 배낭을 메고 치악산 입구 백척철교를 향하여 도로를 따라 걸었다.
동네 사람들의 이상하게
처다보는 약간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면서 철교를 지나 등산로 초입에 다다랐다. 오늘의 코스는 영원사 코스이다. 그많은 치악산 등산코스 중에서도
인적이 드믄곳이다.
계곡을 따라 올라 남대봉에 오르고 북쪽으로 쭉 뻗어있는 치악산 주능선을 따라 정상 비로봉에 이르는 20키로에
이르는 치악산 종주 코스다. 나도 처음 가보는 길이라서 조심스럽게 전진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 코스는 그 당시에는 인적이 드믈어 길이 희미
하였다.
잡풀이 무성하여 행여나 뱀이나 나올까 조바심하며 계곡을 따라 전진했다. 태고의 원시림을 연상시키듯 울창한 숲이 연속된다.
얼마를 갔을까? 날이 어둑어둑 해진다. 내리던 비는 어느덧 조금 잦아 들었다.
어딘지도 모를 계곡 옆에다 터를 다지고 텐트를
설치했다. 저녁 식사를 대충 마치고 밖에 나가보니 컴컴한 암흑이 나의 마음을 짖누르는것 같이 느껴졌다. 어딘지도 모를 산중에 나 혼자만
있나보다.
갑자기 고독이 밀려오고 겁도 나기 시작한다.
혼란한 마음에 잠도 오질 않는다. 이리뒤척 저리뒤척이다 보니 날이
밝아 오는듯하다. 밖에 나가보니 새벽의 신선한 공기가 온산을 휩슬고 있다. 서둘러 출발한다. 비는 이슬비 수준으로 격하되어 있었다. 남대봉으로
오르는 길은 좀 헷갈린다.
겨우 길을 잡아 능선길을 따라 북으로 북으로 전진한다. 주능선길은 소로의 연속이다. 반팔을 입은 나의
팔을 사정없이 할퀴고 꼬집고 난리를 피운다. 긴장된 마음으로 산행을 계속하여 향로봉을 지나 억새 투성이인 고둔치에 도착한다.
어제
부터 지금까지 치악산엔 나 밖엔 없나보다.
사람이 그립다.
고둔치를 지나면서 부터는 오름길의 연속이다. 무명봉에 올라서니
햇볕이 나오기 시작하며 수없이 많은 잠지리들의 축제가 시작되고 있었다. 멋지게 펼쳐지는 전망과 비온후의 싱싱함이 겹치면서 정말 멋진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잠깐 생각에 잠긴다.
이땅에 태어나서 이런 멋진 산하를 다니는 나는 대단한
행운아라고....
황골 갈림길을 지난다. 비로봉이 가까워 지니 사람소리가 들린다. 정작 비로봉에 서니 사람은 없다. 정상에 서있는
세개의 돌탑은 오늘도 의연하게 서 있었다.
짧은 1박2일의 산행이었지만 오랜시간이 지난 느낌이었고 멋진
산행이었다.
구룡사로 하산길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일이 칠월 칠석이다. 이날은 할아버지 제삿날이다.
어이쿠 ! 빨리 집에
가야지!
나는 서둘러 서울로 가는 기차를 잡아탔다.
배경음악 Quix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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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5월 치악산 비로봉에서
치악산과 나와의 만남 두번째 이야기
1986년 1월 27일 ~28일 새벽 텔레비젼 뉴스는 미국의 우주 왕복선 챌린져호가 발사한지 얼마 안돼서 폭발했다고 긴급 뉴스를 전한다. 허나 그것이 나의 산행길을 멈추게 할일은 전혀없다. 그시절의 나는 산에 빠져 정신이 없는 그야말로 산 아니면 죽음을 달라였다.
서둘러 마장동 시외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한겨울의 추위를 느끼면서 산행 들머리인 내원골 입구로 접어들었다. 오늘 코스는 이 내원골로 들어가서 치악산 주능선에 올라 정상을 경유 매화산으로 가는 30키로에 달하는 장거리 코스로 잡아 보았다.
내원골이 산행 대상지인지 등산로가 제대로 있는지 잘모르겠다. 지도를 보고 그럴듯하여 잡은 코스다. 겨울이니 잡목도 없을 것이고 한번 치고 올라 갈만하다고 생각했다. 인적이 끊긴 계곡을 거슬러 올라간다. 길이 있는지 없는지 감을 못잡겠다.
희미한 길 비슷한 흔적을 따라가본다. 겨울철이라 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 부담은 없었다. 갑자기 얕으막한 고갯길을 올라서니 오른쪽 능선길이 훤하게 뚤려있다. 직감적으로 그 능선길이 주능선으로 치고 올라가는 길임을 알수 있었다.
고개 말랑에는 색이 바랜 리본도 하나 보인다. 아하! 이곳에도 등산인들이 다니긴 다녔구나! 약간 안도의 느낌이 든다. 계속 전진하니 리본이 몇개 더 보인다. 저앞 멀리 솟아있는 무명봉이 가까워 질수록 눈이 많아진다.
허리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면서 주능선상에 올라섰다. 주능선은 사람들이 좀 다닌듯 러셀 흔적이 희미하다. 북으로 북으로 남대봉을 지나고 비로봉 정상을 향하여 전진한다.
향로봉을 지나고 탁트인 능선지대를 지날때는 심한 눈보라가 몰아쳐 손이 끊어질듯 얼어온다. 서둘러 오버미튼을 착용하니 어느정도 진정된다. 고둔치를 지나면 치악산 주능선길은 지독한 오름길의 연속이다. 텐트까지 짊어진 배낭과 둔탁한 동계용 비브람을 신은 나는 점점 지쳐온다.
20보 가서 잠간 쉬고 다시 20보 가서 잠간 쉬고 하는식으로 얼마를 갔을까? 드디어 비로봉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도 비로봉엔 아무도 없고 바람과 세개의 돌탑만이 나를 맞아준다. 여기서 북동 방향으로 능선을 잡아야 매화산이다. 순간 길을 잘못든것을 감지했다.
날도 어두워져서 그냥 내려가서 계곡가에 텐트를치고 하룻밤을 보냈다. 다시 주능선을 향한다.점점 치쳐가는 몸과 마음. 나는 뭣때문에 이런 고생을 하나, 잠시 생각에 젖어본다. 불현듯이 나의 뇌리에 스치는 영감은 산이 좋아서라는 결론이다. 아니 나올수 밖엔 없을것이다. 그렇다. 내가 좋아서 하는것이다. 내가 좋아하지 않으면 절대 할수없는 것이다.
매화산을 향하여 길을 잡아본다. 길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순간 실수로 쭉 미끄러진다. 한 7-8미터를 굴러 떨어진다. 여기서 다치면 끝장이다. 요새처럼 핸펀이 있나 도와줄 사람이 있을리도 없고 아찔한 순간이다. 다행이 크게 다친데는 없는것 같다. 정말 다행이다.
능선길이 순탄해진다. 갑자기 저앞에서 인기척이 있다. 이 깊은 산중에 왠 사람이 있을까? 그사람은 동네 아저씨였다. 낫을 들고 있었고 고무장화를 신고 있었는데 돼지 잡으러 왔다고 했다. 하여간 사람을 만나 반가웠다.
매화산은 아직 저멀리 솟아있다. 갑자기 지겨운 생각과 피곤이 엄습한다. 아까 미끄러질때 충격이 있는듯 몸도 정상이 아니다. 평소 타인에게서 포기가 빠르다는 지적을 받은 경력이 있었던 나는 역시 그것이 허풍이 아닌걸 증명하고 있었다. 나는 산행포기를 결심했다.
빨리 내려가려고 왼쪽 길도 없는 곳으로 포인트를 잡아 무작정 내려가기 시작했다. 곧 계곡으로 떨어졌다. 얼음이 깊게 얼은 웅덩이를 지난다. 순간 으지직 하면서 허리까지 쑥 들어간다. 어이쿠! 사람살려! &^%$^^ 간신이 완전히 빠지는 위기를 모면했다. 정말 위기의 순간이었다.
치악산 산신령님이 나의 나태한 정신상태를 꾸짖는것은 아니었을까? 아니 너무 급하게 내려 가려고 서두룬것이 하마터면 물귀신이 될뻔한 빌미를 제공했던것이 아니었을까? 암튼 서울 가는 차안에서 나는 또다시 다음 치악산행을 또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못말린 그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