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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2/20 맹산-남한산성 종주산행


↑왕기봉에서 바라본 맹산의 모습

  ↑검단산 정상의 이정표                         ↑성남시와 광주시를 연결하는 갈마치 고개

 

산행지도


★05 2/20 맹산-남한산성 산행기록★-26차

산행일자: 2005년 2월 20일
날씨: 맑은후 흐림(강풍)  
산행시간:약 7시간 (휴식및 식사시간 포함)

산행코스: 새마을연수원-거북터-맹산(영장산)정상-갈마치-이배재-왕기봉-검단산-남한산성 남문-수어장대-서문-헬기장-거여동종점
산행시간표
10:30  새마을 연수원 출발(산행시작)
10:47  토끼골 도착
11:00  거북터 통과 
11:11  맹산(영장산)정상 도착   
12:18  영생사업소 뒷능선 표지판 통과

12:40  갈마치 도착   
12:40-13:12  식사및 휴식  
13:55  이배재고개 도착

14:23  왕기봉 전위봉 통과

14:43  왕기봉 도착

14:50  사기막골 뒷능선 표지판 통과 
15:04  검단산 약수터 통과   
15:25  검단산 헬리포트 도착
16:00  남한산성 남문과 동문 갈림길 표지판 도착

16:48  남한산성 서문 도착

17:30  헬기장 도착

17:50  거여동 버스종점 도착(산행끝) 

 

맹산-남한산성 개요: 맹산(영장산 414.2m)에서 남한산성에 이르는 능선은 성남시와 광주시의 경계를 이루며 남에서 북으로 뻗어있는 산줄기이다. 서울에서 성남시로 들어오면 좌측 즉 동쪽으로 놓여있는 산줄기를 볼수있다. 한남정맥 용인 북서쪽 석성산(471m)에서 분기한 이른바 검단지맥은 북으로 뻗다가 수도권에 이르러 맹산과 검단산(534.7m),남한산등을 일으키고 하남의 검단산(657m)에서 북한강에 의해 맥이 끊긴다. 이 능선상의 성남시와 광주시의 경계에 위치한 산들이 맹산(영장산),왕기봉,검단산,남한산성이있는 청량산등이다. 맹산이라는 산이름은 산밑에 맹씨들이 많이 살고있어 붙여졌다고 하며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원래의 산이름은 영장산이라고 한다.

 

참석자: 니케,마음,비단향,산친구,아리랑,

작성자: 산친구

  


왜이렇게 산에 가는 날만 추워지는지 모를 지경이다. 예년의 2월 하순이면 봄소식의 훈기가 도는 시기인데 올해는 늦추위가 장난이 아니다.하지만 며칠전에 내린 눈소식에 멋진 설경을 기대하며 장장 두시간을 지하철에 의지해 분당의 서현역에 도착한다. 움추려 드는 날씨지만 새로운 산에 대한 기대를 걸며 출발시간 보다 빨리온 80번 마을버스에 부리나케 올라탄다.           

 

 

~ 산행 ~

 

예상외의 눈을 밟으며 정상을 넘어

서현역을 출발한 마을버스는 10여분도 채안되어 새마을 연수원입구에 우리를 내려 놓는다. 맹산을 오르려면 이곳에서 약 500미터 정도 떨어진 연수원 정문으로 가야한다. 정문 오른쪽으로 나있는 등산로로 접어드니 굳게 잠겨있는 산불통제소를 지나친다. 등산로는 동네사람들이 많이 다닌듯 넓은 대로의 형태를 띠고있다. 하지만 오늘은 날씨가 너무 추운탓인지 등산로에는 오고가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고 있었다. 서서히 눈길로 바뀌는 산길을 15분정도 전진하니 토끼골이라고 써 놓은 팻말이 보이고 벤치도 놓여 있는 곳을 통과한다.

 

등산로는 서서히 오름길이다. 며칠전에 두번에 걸쳐 내린 눈으로 등산로는 제법 아니 상당히 많은 눈으로 덮여있었다. 한겨울에도 보기 힘든 눈이었는데 봄이 가까워진 지금에서야 눈을 밟으니 어째 세월이 꺼꾸로 가는 기분이다. 급경사로 이루어진 계단 길을 힘들게 10여분 넘게 올라서니 오거리 안부를 이룬 이곳에 해발 360미터인 거북터란 이정표가 보인다. 맹산 정상까지는 300미터를 남기고 있었다. 능선에 올라서니 이제까지는 없던 강풍이 불기 시작한다. 도저히 참을수없어 배낭 깊숙히 넣어 두었던 털모자를 다시 꺼내야 했다. 다시 이어지는 급경사의 계단길을 올라서니 넓은 공터에 영장봉이라고 쓰인 돌비석이 서있는 맹산 정상이 나온다.

 

역시 벤치와 운동시설이 있는 이곳은 동네 사람들의 조기 산책코스였다. 이를 반증하듯 동네분들이 벤치에 모여 앉아 있었다. 멀리 나무사이로 오늘 우리가 가야할 검단산과 왕기봉, 남한산성일대가 아주 멀리 보이고 있었다. 강풍에 시달린 우리들은 곧 바로 길을 재촉한다. 급하강하는 산길은 눈이 다져진 빙판길로 변해있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그냥 인정사정 없이 미끄러져 내동댕이칠 태세였다. 조심조심 천천히 내려갈수 밖엔 도리가 없었다. 그런길을 10여분 내려가니 또 다시 이정표가 기다린다.  ←모리야산 기도원 1.7킬로   ↑광주시 이당골 1.3킬로  ↓남서울 공원묘지 1.7킬로    영장산 정상 600미터 → 라고 이정표에 기록되어 있었다.

 

 

이배재를 지나니 지루한 오름길이

 등산로는 여전히 빙판길이 되다시피한 눈길의 연속이다. 좌측으로 분당 아파트형 공장인 테그노파크의 모습이 내려다 보이고 커다란 송전탑이 연달아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조심하여 미끄러운 내리막을 꾸불꾸불하게 돌아가니 작은 고개가 나오고 있다. 이름을 정확히 모르지만 뚜렷한 사거리 안부였다. 모리야산 기도원으로 내려가는 길이있는 곳이었다. 고개를 지나 완만한 경사를 따르니 영생사업소 뒷능선이란 이정표가 보이더니 왼쪽으로 괴상하게 생긴 시설물인 기계음이 요란한 곳을 지난다. 곧 능선이 좌우로 갈리는 지점인데 이곳에서 우측 능선길로 접어 들어야한다. 간간이 보이는 성남시계 종주라고 쓰인 통나무 이정표가 좋은 길잡이 역활을 하고 있었다.

 

시야는 좋지 않았지만 나무가지 사이로 멀리 검단산과 왕기봉 일대가 보이고 있었다. 커다란 송전탑에 올라가니 저 앞에 고개길이 가늠된다. 갈마치였다. 경사가 없는 평탄한 길을 10여분 전진하니 갈마치의 도로가 보인다. 바람이 없는 평탄한 곳에 메트리스를 깔고 식사와 휴식시간을 갖는다. 차가 간간이 지나가는 좁은 도로인 갈마치에는 산불감시인이 완장을 두르고 산객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바짝 긴장했지만 산불에 대한 주의사항을 전달하고는 가라고 한다. 천만 다행이었다.

 

놀란 마음을 진정하고 나무를 벌목한 지대를 지나 경사를 오르니 송전탑이 보이고 능선이 좌우로 갈리고 있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모르겠으나 가스가 잔뜩끼는 날이면 길을 잃기 쉬운 곳이었다. 이배재로 가는 길은 좌측길이었다. 비교적 평탄한 산길을 오르락 내리락하다보니 차소리가 들린다. 광주시와 성남시를 연결하는 이배재고개였다. 이배재에서 왕기봉으로 오르는 산길이 시작된다. 통나무 계단길을 지루하게 올라가니 평탄한 산길이 짧게 나오고는 이내 심한 경사길이 시작된다. 산이 낮다고 얕보면 안된다는 것을 왕기봉 오름길은 깨우쳐 주고 있었다.

 

여전히 지독하게 계속되는 차가운 칼바람을 맞으며 힘들게 경사를 올라서니 탁자가 놓여있는 평평한 봉우리가 나온다. 이곳은 왕기봉 전의 일종의 전위봉에 해당하는 봉우리였다. 왕기봉은 저만치 느긋한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푹푹 빠지는 눈길을 헤치며 나가니 사기막골 갈림길 700미터를 남겼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곧이어 멋진 전망이 펼쳐지는 전망바위를 통과하니 대리석으로 만든 돌비석이 세워져있는 왕기봉 정상이다. 진흥산악회에서 세운 돌비석에는  "산을 많이 오르지 아니하면 병든후에 뉘우친다" 라고 씌어있다. 그럴듯한 말이었다.

 

 

검단산을 뒤로하고 산성으로    

다시 나오는 이정표는 사기막 유원지를 알린다. 이곳부터는 산길이 널찍하고 평탄해지고 있었다. 지형도 평탄하고 평퍼짐한 지형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산길도 여러군데로 갈리고 어수선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어딘가에 물도 흐를것 같은 느낌은 여지없이 약수터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시원한 물한잔을 돌이키고 이정표를 바라보니 검단산 정상 800미터 왕기봉 1050미터를 알리고 있다. 이곳에서는 갈림길이 많아 길조심을 해야했다. 제일 뚜렷하고 넓은 산길을 따르니 좌우로 산길이 갈라진다. 좌측길은 검단산 헬리포트로 오르는 길이고 우측길은 산성으로 향하는 시멘트 도로로 가는 길이었다.

 

좌우 어디로 가도 상관은 없어 보였다. 어차피 검단산 정상은 군사시설이 들어차있어 가지를 못한다. 눈으로 뒤덮인 등산로를 따르니 이윽고 시멘트 포장길이 나온다. 이곳에서도 좌측으로 가면 헬리포트를 갈수가 있었다. 휴일을 맞아 남한산성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이 많이 보이고 있다. 우리도 산성을 향해 우측으로 내려간다. 검단산 정상 능선일대는 지뢰밭을 알리는 황당한 안내판과 철조망에 의해 접근이 차단되어 있어 이 도로를 따라야만 되었다. 곧 산으로 들어서는 등산로가 보였지만 곧 시멘트 도로하고 다시 만나고 있다. 한참을 내려가니 이정표에는 남한산성 남문과 동문이 갈리는 지점을 표시한다. 우리는  도로를 버리고 남문으로 가는 왼쪽 오솔길을 따랐다.

 

오른쪽으로 산성의 벽이 나타나면서 산길은 반질반질한 빙판길이 연속된다. 이곳은 매우 조심을 해야만 되었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을 택해 내려서니 남문 매표소가 나온다. 매표소 직원에게 서문으로 가서 겨여동으로 내려갈수 있냐고 물으니 돌아오는 대답은 영 시원찮다. 입장료만 받으면 된다는 식이었는데 매우 유감스럽게 여겨진다. 남문을 지나 왼쪽으로 이어지는 넓은 산성길을 따르다 좁은 오솔길을 따르니 곧 수어장대가 나온다. 성벽을 따라 펼쳐지는 서울시의 전망은 아주 일품이었다. 멀리 청계산과 관악산을 지나서 한참 북으로 북한산과 도봉산이 꼬리를 잇고 있었다. 

 

수어장대에서 10분 정도 내려가니 서문이 나온다. 서문을 나서니 바로 앞으로 하산길이 보인다. 전에는 못보던 산길이었는데 어느새 뚜렷한 등산로로 변해있었다. 우리는 산성을 따라갔다. 조금 가니 벤치가 놓여있는 전망이 기가막힌 곳이 나오는데 이곳은 10년전쯤엔 활공 이륙장으로 쓰이던 곳이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나있는 하산길로 내려가기로 했다. 빙판길이라 아이젠을 착용해 보지만 만만치 않다. 급내리막을 보이는 하산길을 30분정도 내려가니 헬기장이 나온다. 산 능선도 아닌데 웬 헬기장인가 물어보지 않을수없다. 아마도 옆에있는 공수부대와 관련이 있나보다. 

 

서을 근교산 어디에도 있는 그 흔한 모습의 약수터와 치성을 드리는 제단을 지나니 상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도 등산장비점이 잔뜩 진을 치고 있었다. 산밑의 등산 장비점은 언제 부터인가 흔한 모습이다. 산에 다니는 사람들에겐 굉장히 편리해진 셈이었다. 이모두가 세월의 변화에서 온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는 장비점에서 장비를 구경도하고 사기도 하면서 이번 산행의 대미를 장식헀다.                   

 

 

 

산행길 안내-3호선 분당선 서현역(삼성프라자 1번게이트)에서 길을 건너 80번 마을버스를 타고 새마을연수원 입구에서 하차한다. 소요시간 10분 요금 700원-매시 15분 45분에 출발. 버스를 내려 연수원방향으로 500미터 정도 가면 연수원 정문 오른쪽으로 등산로가 있다. 

 

 

산행사진




맹산의 모습



↑토끼골로 올라오는 회원들



↑갈마치고개를 향하는 모습



↑나무가지 사이로 보이는 검단산과 왕기봉



↑낙엽이 푹푹 빠지는 등산로



↑이배재고개로 내려가기 직전의 나무숲지대



↑이배재 고개로 내려서는 회원들



↑거목



↑나무에 기생하는 버섯



↑왕기봉의 가파른 오름길



↑청계산(좌)과 관악산(우)의 원경



↑검단산 정상을 대신하는 헬리포트



↑남한산성으로 가는 길



↑남한산성 서문을 통과하는 회원들



↑남한산성에서 바라본 북한산과 도봉산의 원경



↑하산길에 바라본 남한산성의 모습

 

40대-50대 싱글(이혼,사별,미혼)들의 모임!

홈페이지 주소 cafe.daum.net/mannammt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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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악산과 나와의 만남 그 세번째 이야기


치악산 정상 비로봉(시루봉)


1985년 8월 20일

주룩주룩 쏟아지는 비를 뚫고 원주 시내버스는 금대리 버스 종점에 나를 덩그러니 내려 놓는다. 잠시 비를 피해있던 나는 빗줄기가 좀 가늘어짐을 틈타 텐트까지 집어 넣어 약간 묵직한 중형 배낭을 메고 치악산 입구 백척철교를 향하여 도로를 따라 걸었다.

동네 사람들의 이상하게 처다보는 약간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면서 철교를 지나 등산로 초입에 다다랐다. 오늘의 코스는 영원사 코스이다. 그많은 치악산 등산코스 중에서도 인적이 드믄곳이다.

계곡을 따라 올라 남대봉에 오르고 북쪽으로 쭉 뻗어있는 치악산 주능선을 따라 정상 비로봉에 이르는 20키로에 이르는 치악산 종주 코스다. 나도 처음 가보는 길이라서 조심스럽게 전진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 코스는 그 당시에는 인적이 드믈어 길이 희미 하였다.

잡풀이 무성하여 행여나 뱀이나 나올까 조바심하며 계곡을 따라 전진했다. 태고의 원시림을 연상시키듯 울창한 숲이 연속된다. 얼마를 갔을까? 날이 어둑어둑 해진다. 내리던 비는 어느덧 조금 잦아 들었다.

어딘지도 모를 계곡 옆에다 터를 다지고 텐트를 설치했다. 저녁 식사를 대충 마치고 밖에 나가보니 컴컴한 암흑이 나의 마음을 짖누르는것 같이 느껴졌다. 어딘지도 모를 산중에 나 혼자만 있나보다.
갑자기 고독이 밀려오고 겁도 나기 시작한다.

혼란한 마음에 잠도 오질 않는다. 이리뒤척 저리뒤척이다 보니 날이 밝아 오는듯하다. 밖에 나가보니 새벽의 신선한 공기가 온산을 휩슬고 있다. 서둘러 출발한다. 비는 이슬비 수준으로 격하되어 있었다. 남대봉으로 오르는 길은 좀 헷갈린다.

겨우 길을 잡아 능선길을 따라 북으로 북으로 전진한다. 주능선길은 소로의 연속이다. 반팔을 입은 나의 팔을 사정없이 할퀴고 꼬집고 난리를 피운다. 긴장된 마음으로 산행을 계속하여 향로봉을 지나 억새 투성이인 고둔치에 도착한다.

어제 부터 지금까지 치악산엔 나 밖엔 없나보다.
사람이 그립다.

고둔치를 지나면서 부터는 오름길의 연속이다. 무명봉에 올라서니 햇볕이 나오기 시작하며 수없이 많은 잠지리들의 축제가 시작되고 있었다. 멋지게 펼쳐지는 전망과 비온후의 싱싱함이 겹치면서 정말 멋진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잠깐 생각에 잠긴다.
이땅에 태어나서 이런 멋진 산하를 다니는 나는 대단한 행운아라고....

황골 갈림길을 지난다. 비로봉이 가까워 지니 사람소리가 들린다. 정작 비로봉에 서니 사람은 없다. 정상에 서있는 세개의 돌탑은 오늘도 의연하게 서 있었다.

짧은 1박2일의 산행이었지만 오랜시간이 지난 느낌이었고 멋진 산행이었다.

구룡사로 하산길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일이 칠월 칠석이다. 이날은 할아버지 제삿날이다.
어이쿠 ! 빨리 집에 가야지!
나는 서둘러 서울로 가는 기차를 잡아탔다.



치악산 개념도




배경음악 Quix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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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4년 5월 치악산 비로봉에서

 

치악산과 나와의 만남 두번째 이야기

 1986년 1월 27일 ~28일 새벽 텔레비젼 뉴스는 미국의 우주 왕복선 챌린져호가 발사한지 얼마 안돼서 폭발했다고 긴급 뉴스를 전한다. 허나 그것이 나의 산행길을 멈추게 할일은 전혀없다. 그시절의 나는 산에 빠져 정신이 없는 그야말로 산 아니면 죽음을 달라였다.

 

서둘러 마장동 시외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한겨울의 추위를 느끼면서 산행 들머리인 내원골 입구로 접어들었다. 오늘 코스는 이 내원골로 들어가서 치악산 주능선에 올라 정상을 경유 매화산으로 가는 30키로에 달하는 장거리 코스로 잡아 보았다.

 

내원골이 산행 대상지인지 등산로가 제대로 있는지 잘모르겠다. 지도를 보고 그럴듯하여 잡은 코스다. 겨울이니 잡목도 없을 것이고 한번 치고 올라 갈만하다고 생각했다. 인적이 끊긴 계곡을 거슬러 올라간다. 길이 있는지 없는지 감을 못잡겠다.

 

희미한 길 비슷한 흔적을 따라가본다. 겨울철이라 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 부담은 없었다. 갑자기 얕으막한 고갯길을 올라서니 오른쪽 능선길이 훤하게 뚤려있다. 직감적으로 그 능선길이 주능선으로 치고 올라가는 길임을 알수 있었다.

 

고개 말랑에는 색이 바랜 리본도 하나 보인다. 아하! 이곳에도 등산인들이 다니긴 다녔구나! 약간 안도의 느낌이 든다. 계속 전진하니 리본이 몇개 더 보인다. 저앞 멀리 솟아있는 무명봉이 가까워 질수록 눈이 많아진다.

 

허리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면서 주능선상에 올라섰다. 주능선은 사람들이 좀 다닌듯 러셀 흔적이 희미하다. 북으로 북으로 남대봉을 지나고 비로봉 정상을 향하여 전진한다.

 

향로봉을 지나고 탁트인 능선지대를 지날때는 심한 눈보라가 몰아쳐 손이 끊어질듯 얼어온다. 서둘러 오버미튼을 착용하니 어느정도 진정된다. 고둔치를 지나면 치악산 주능선길은 지독한 오름길의 연속이다. 텐트까지 짊어진 배낭과 둔탁한 동계용 비브람을 신은 나는 점점 지쳐온다.

 

20보 가서 잠간 쉬고 다시 20보 가서 잠간 쉬고 하는식으로 얼마를 갔을까? 드디어 비로봉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도 비로봉엔 아무도 없고 바람과 세개의 돌탑만이 나를 맞아준다. 여기서 북동 방향으로 능선을 잡아야 매화산이다. 순간 길을 잘못든것을 감지했다.

 

날도 어두워져서 그냥 내려가서 계곡가에 텐트를치고 하룻밤을 보냈다. 다시 주능선을 향한다.점점 치쳐가는 몸과 마음. 나는 뭣때문에 이런 고생을 하나, 잠시 생각에 젖어본다. 불현듯이 나의 뇌리에 스치는 영감은 산이 좋아서라는 결론이다. 아니 나올수 밖엔 없을것이다. 그렇다. 내가 좋아서 하는것이다. 내가 좋아하지 않으면 절대 할수없는 것이다.

 

매화산을 향하여 길을 잡아본다. 길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순간 실수로 쭉 미끄러진다. 한 7-8미터를 굴러 떨어진다. 여기서 다치면 끝장이다. 요새처럼 핸펀이 있나 도와줄 사람이 있을리도 없고 아찔한 순간이다. 다행이 크게 다친데는 없는것 같다. 정말 다행이다.

 

능선길이 순탄해진다. 갑자기 저앞에서 인기척이 있다. 이 깊은 산중에 왠 사람이 있을까? 그사람은 동네 아저씨였다. 낫을 들고 있었고 고무장화를 신고 있었는데 돼지 잡으러 왔다고 했다. 하여간 사람을 만나 반가웠다.

 

매화산은 아직 저멀리 솟아있다. 갑자기 지겨운 생각과 피곤이 엄습한다. 아까 미끄러질때 충격이 있는듯 몸도 정상이 아니다. 평소 타인에게서 포기가 빠르다는 지적을 받은 경력이 있었던 나는 역시 그것이 허풍이 아닌걸 증명하고 있었다. 나는 산행포기를 결심했다.

 

빨리 내려가려고 왼쪽 길도 없는 곳으로 포인트를 잡아 무작정 내려가기 시작했다. 곧 계곡으로 떨어졌다. 얼음이 깊게 얼은 웅덩이를 지난다. 순간 으지직 하면서 허리까지 쑥 들어간다. 어이쿠! 사람살려! &^%$^^ 간신이 완전히 빠지는 위기를 모면했다. 정말 위기의 순간이었다.

 

 

치악산 산신령님이 나의 나태한 정신상태를 꾸짖는것은 아니었을까? 아니 너무 급하게 내려 가려고 서두룬것이 하마터면 물귀신이 될뻔한 빌미를 제공했던것이 아니었을까? 암튼 서울 가는 차안에서 나는 또다시 다음 치악산행을 또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못말린 그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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