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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 [淸凉山]

높이 : 870m

위치 : 경북 봉화군 명호면

 

특징, 볼거리/

1/청량산은 기암괴석이 봉을 이루며 최고봉인 의상봉을 비롯해 보살봉 금탑봉 연화봉 축융봉 등 12개의 암봉이 총립해 있고 봉마다 대(臺)가 있으며 자락에는 8개 굴과 4개 약수, 내청량사(유리보전)와 외청량사 (웅진전), 이퇴계 서당인 오산당(청량정사)등이 있다.

 

청량산은 우선 산 곳곳에 깎아지른 듯한 층암절벽이 괴상한 모양의 암봉들과 어우러진 모습이 절경이다.둥글둥글하게 생긴 암봉들이 여덟개나 되고 그 암봉들이 품고 있는 동굴만도 열두개에 이른다. 또 동굴 속에는 총명수 감로수 원효샘 같은 샘들이 솟아나고 있다

 

산행의 백미는 의상봉 정상에 올라 낙동강 줄기를 감싸안은 청량산 줄기가 치맛자락처럼 펼쳐져 있는 모습을 조망하는 것. 정상 남쪽의 축융봉(845m)에서 바라보는 청량산의 전경 또한 일품이다

 

청량산 속에는 한때 30개의 사암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내청량사, 외청량사 두 곳이 남아있을 뿐이다. 응진전은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청량사의 암자로 663년에 세워진 청량산에서 가장 경관이 뛰어나다

 

외청량(응진전) 못지 않게 내청량(청량사)도 수려하다. 응진전에서 20분거리. 풍수지리학상 청량사는 길지중의 길지로 꼽힌다. 육육봉(12 봉우리)이 연꽃잎처럼 청량사를 둘러싸고 있다. 청량사는 연꽃의 「수술」자리.

 

응진전과 함께 지어진 고찰 청량사에는 진귀한 보물 2개가 남아있다. 공민왕의 친필로 쓴 현판 "유리보전"과지불.유리보전은 약사여래불을 모신 곳이라는 뜻이다. 지불은 종이로 만든 부처. 국내에서는 유일하다. 지금은 금칠을 했다

 

청량사 바로 뒤에는 청량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보살봉이 있다. 원래 이름은 탁필봉이지만 주세붕선생이 지형을 보고 봉우리 이름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

 

 

청량산의 아름다움은 퇴계가 자신의 시조에서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는 나와 백구뿐"이라고 읊은 데에서도 잘 나타난다. 퇴계는 어릴 때부터 청량산에서 글을 읽고 사색을 즐겼으며 말년에도 도산서당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틈틈이 이 산을 찾았다.

 

청량산 주변에는 신라시대 최치원의 유적지로 알려진 고운대와 명필 김생이 서도를 닦던 김생굴, 김생굴 외에도 암릉을 따라 금강굴, 원효굴, 의상굴, 반야굴, 방장굴, 고운굴, 감생굴 등이 들어서 있다.

 

이밖에 공민왕이 피란와서 쌓았다는 청량산성, 최치원과 김생이 바둑두던 난가대 등도 더듬어볼 만한 발자취다

 

입석에서 등산로를 따라 30분 정도. 뒤로는 거대한 금탑봉이 병풍처럼 둘러서있고 아래는 아득한 낭떠러지. 바위가 마치 9층으로 이뤄진 금탑모양을 하고 있다. 층마다 소나무들이 테를 두른 듯 암벽에 뿌리를 내렸다. 절벽 아래로 붉게 타는 단풍이 장관이다

 

 

12봉과 12대

 

12봉 : 장인봉, 외장인봉, 선학봉, 자란봉,자소봉, 탁필봉, 연적봉, 연화봉, 향로봉, 경일봉, 금탑봉,축륙봉, 등 12봉우리

 

12대 : 어풍대, 밀성대, 풍형대, 학소대, 금가대, 원효대, 반야대, 만월대, 자비대, 청풍대, 송풍대, 의상대 등 12개의 대(臺)

 

인기명산 [30위]

 

12봉 12대가 있는 청량산은 이와 어우러진 가을 단풍산행으로 인기가 있으며 여름산행지로도 인기가 있다. 단풍이 절정인 10월, 7월의 초여름 순으로 많이 찾는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산세는 크지 않으나 연이어 솟는 바위 봉우리와 기암절벽이 어우러져 예로부터 소금강으로 꼽힐 만큼 산세가 수려하고, 도립공원으로 지정(1982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리보전, 신라시대의외청량사, 최치원의 유적지인 고운대와 독서당,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은신한 오마대(五馬臺)와 청량산성, 김생이 글씨를 공부하던 김생굴, 퇴계 이황이 수도하며 성리학을 집대성한 오산당(청량정사) 등 역사적 유적지로 유명하다.

 

 

 

 

 

2/경북 봉화군의 청량산(870m)은 낙타 혹 같은 봉이 연립, 그 기이한 경관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산이다. 산수화를 연상시키는 이 청량산은 봉화읍에서 동남쪽으로 29km, 안동시에서 동북쪽으로 24Km 에 위치하며 사람들의 손때가 묻을까 두려운 듯 다소곳이 숨어있다.

 

금탑봉을 비롯하여 아름다운 봉우리 12개,8개의 동굴, 12개의 대와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가 세운 청량사를 비롯한 절터와 암자, 관창폭포 등 수많은 관광자원을 갖고 있다.

청량산도립공원 표석 뒤로 퇴계의 '청량산가' 시비가 있으며, 청량산행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된다.  퇴계는 도산서당을 지을 때, 이곳청량산과 현재 도산서원 자리를 두고 끝까지 망설였을 만큼 청량산을  사랑하고 아꼈다고 한다.  

 

청량산은 퇴계뿐만 아니라 원효, 의상, 김생, 최치원 등의  명사가 찾아와 수도했던 산이며, 그들의 이야기가 곳곳에 남아 전설처럼 전해온다.


퇴계의 청량산가에 나오는 6.6봉은 주봉인 장인봉을 비롯하여 외장인봉, 선학봉, 자란봉, 자소봉,탁필봉, 연적봉, 연화봉, 향로봉,경일봉, 금탑봉, 축융봉 등 12봉우리를 말하며, 모두 바위병풍을 두른듯이 산 위에 솟아있다.

 

또 신라 때의 명필 김생이 서도를 닦았다는 김생굴을 포함하여 금강굴, 원효굴, 의상굴, 방야굴, 방장굴, 고운굴, 감생굴 등 8개 굴이 있다. 특히 김생굴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 오는데, 옛날 김생이 이 굴에서 9년동안 서도를 닦은후, 스스로 명필이라 자부하고 하산할 준비를 했다고 한다. 

 
그러자 한 여인이 나타나 자신도 9년동안 길쌈을 했으니 솜씨를 겨뤄보자고 한다.  이리하여 컴컴한 어둠 속에서 서로 솜씨를 겨루었는데 길쌈해 놓은 천은 한올 흐트러짐이 없는데 반해 김생의 글씨는 엉망이었다.

 

이에 김생은 다시 1년을 더 정진한 후 세상에 나와 명필이라 칭송받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밖에도 최치원이 글을 읽었다는 독서대를 비롯하여 어풍대, 풍혈대 등의 12대가 있고,  최치원이 마시고 정신이 총명해졌다는 총명수와  감로수 등의 약수가 있는데 물맛이 달고 시원하다.  

 

또 역사적 유물로 청량사와 응진전, 오산당, 청량산성 등이 있다.  오산당은 김생굴 앞에 있는데, 퇴계가 문인들과 강론하던 곳에 후학들이 세웠다고 한다.

 

  
청량산 남쪽 축융봉에는 옛 산성터가 남아있는데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와 쌓았다고 하는 청량산성이다.


청량산은 옛 기록에서 이르되 6.6봉, 8대(臺), 3굴을 가진 바위 산이다. 이 산의 중심에 앉은 청량사에서 두루 바라뵈는 9개 봉우리와 그 바깥쪽 3개 봉우리 합해 12봉을 사람들은 청량산 6.6봉이라 불러왔는데,

 

이는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날 속이랴 못믿을 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물 따라 가지 마라 어주자(漁舟子) 알까 하노라' 는 퇴계 이황의 시에서 유래한 말일 것이다.



기암봉들이 모여서 미로와 같은 산릉과 계곡을 이룬 한편 입구만 틀어막으면 안심이었을 이 청량산은 피신처로도 적격이었다.

 

이 청량산으로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들어온 적이 있다. 공민왕은 청량사 법당 유리보전의 현판 글씨를 자신이 청량산을 찾았던 명확한 흔적으로 남겼다.


물론 그 누구보다 이 산을 먼저 찾아들었던 이는 스님네들이다.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가 연대사란 이름의 절을 지금의 청량사 자리에 세웠고, 그후 무려 27개나 되는 사암이 이 청량산 안에 들어 앉았다고 한다.


청량산과의 첫 대면에서는 차마 그 말을 믿기 어렵다. 청량사와 응진전 두 사암이 자리잡은 것만도 용하다 싶을 정도로, 사방에 보이는 것은 몽땅 암봉이며 하나같이 수직으로 깎아질렀다.

 

거기에 절이 앉기는커녕 사람이 걸어 오를 틈새나마 있을까 의심스러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층암절벽들 사이로는 교묘하게 길이 나 있으며, 여기저기에 커다란 법당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념으로 구도열을 사를 암자 정도는 너끈히 앉힐 만한 공간이 널려 있다.

 


<청량산고증>에 따르면 청량산의 원래 이름은 수산(水山)이었으나 청량사 주위가 특히 절승이므로 산을 청량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영천지(榮川誌)>에는 낙타 타 자를 써서 타자산(駝子山)이라 기록되었다고 하니, 이는 곧 청량산봉들이 낙타의 혹과 흡사한 데서 유래했을 것이다.



▶ 청량사 입구 모정 부근에 주차하고 직진, 약 1.5km 올라가면 입석바위 아래 응진전 입구가 나온다.

 

산행은 지형상 이 응진전으로 가는 길을 시발점으로 해야 쉽게 비경 곳곳을 구경할 수 있다.


입석 안내판에서 급경사 사면길을 따라 5~6분 올라가면 '청량사 1.0km, 입석 0.3km' 안내판이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에서 아랫길은 청량사로, 오른쪽 길은 응진전으로 가는 길이다.

 

오른쪽 통나무계단길로 발길을 옮겨 20분 올라가면 수십 길 절벽 중턱에 자리한 외청량사 응진전이 나온다. 683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응진전은 공민왕을 따라 피란 온 노국공주가 16나한상을 모시고 기도했던 곳이다.


응진전을 뒤로하고 5분 거리에 이르면 오른쪽 절벽 아래 바위구멍에 있는 샘터인 총명수가 있다. 총명수를 뒤로하고 2분 거리에 청량사 지붕이 내려다보이는 어풍대에 닿는다.

 

수십 길 낭떠러지인 어풍대에서는 내청량사를 가운데 두고 서쪽과 북쪽을 에워싸고 있는 연화봉, 자란봉, 뒤실고개, 연적봉, 탁필봉, 자소봉 등이 휘둘러 보인다.


어풍대를 뒤로하고 4~5분 가면 '←청량사, 김생굴→' 안내판이 있는 삼거리다. 여기서 산행은 오른쪽 길로 이어진다. 5분 정도 올라가면 또 나오는 삼거리에서 오른쪽 급경사길은 금탑봉으로 가는 길이다.

 

왼쪽 길로 5분 올라가면 김생굴에 닿는다. 김생굴을 뒤로하고 왼쪽 아래가 급경사인 사면길을 따라 15분 거리에 이르면 남쪽 청량사 방면 갈림길이 있는 지능선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에서 북쪽 가파른 능선길로 7~8분 올라가면 급경사 돌밭길로 들어선다. 8분 더 오르면 '의상봉 1.6km, 응진전 1.4km' 안내판이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 오른쪽 급경사 길로 30m 오르면 주능선 안부 철계단 아래에 닿는다.

 

철계단으로 발길을 옮겨 20m 올라가면 자소봉 중턱 너럭바위 전망장소에 닿는다. 자소봉 꼭대기는 20m 수직절벽이다. 북서쪽으로 비봉, 북으로 소백산 방면 백두대간이 시야에 와닿는다. 동으로는 일월산, 남으로는 축융봉이 마주보인다.


자소봉 철계단을 다시 내려와 안부에서 자소봉 남쪽 절벽 하단부 우회길로 5분 거리에 이르면 탁필봉 꼭대기를 밟는다. 노송 어우러진 탁필봉에서는 지나온 자소봉이 첨탑처럼 마주보인다.

 

탁필봉을 내려서서 서쪽 능선길로 10분 거리에 이르러 약 20m 높이 급경사 철계단을 내려서면 뒤실고개다. 대개 여기서 청량사로 하산한다.


뒤실고개에서 계속 서쪽 능선을 타고 5분 오르면 795m봉이다. 795m봉을 뒤로하고 계단길을 지나면 자란봉 안부에 닿는다. 안부에서 왼쪽으로 약 100m 내려가면 '의상봉 0.6km, 자소봉 1.3km' 안내판이 있는 삼거리다.

 

삼거리에서 급경사 길을 20분 더 오르면 '의상봉 870.4m' 라고 새겨진 정상비석이 있다.  정상은 주변이 숲으로 에워싸여 시원한 조망이 안 된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약 100m 더 나가면 쇠난간과 노송이 있는 전망장소가 나타난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 풍광이 일품이다.



하산은 전망장소에서 남쪽 두들마 마을로 내려서는 하산로가 있다. 이 코스는 워낙 급경사여서 처음에는 조심해야 한다. 20 여분 내려서면 두들마 마을로 들어선다. 마을을 지나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20분 더 내려오면 청량폭포 앞 폭포슈퍼 민박집이다.


청량사를 구경하려면 정상에서 뒤실고개로 다시 내려와 남쪽 계곡으로 20분 내려서면 청량사 본전인 유리보전이 나온다.


청량사는 문무왕 때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전해진다. 유리보전에 모셔져 있는 약사여래불은 특이하게도 종이를 녹여 만든 지불(紙佛)이다. 유리보전 현판글씨는 공민왕 친필이다.


유리보전을 뒤로하고 범종각을 지나 침목이 깔린 급경사 내리막길로 들면 왼쪽으로는 찻집 안심당이 눈길을 끈다.

 

산악인 이대실씨가 15년째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차를 무료로 제공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안심당을 뒤로하고 S자로 굽돌아 내리는 급경사길로 15분 거리에 이르면 주계곡 도로와 만나는 삼거리에 닿는다.


청량사 입구 삼거리를 기점으로 입석 - 응진전 - 어풍대 - 김생굴 - 자소봉 - 탁필봉 - 뒤실고개 - 자란봉을 경유하여 정상에 오른 다음, 두들마 - 폭포슈퍼민박, 또는 뒤실고개 - 청량사를 경유해 삼거리로 내려오는 산행거리는 4km 안팎으로, 4시간 안팎이 소요된다.



시간이 남는 경우에는 승용차를 이용, 응진전 입구에서 약 500m 더 간 청량산휴게서 앞마당에 주차시키고, 축융봉을 다녀오는 것도 괜찮다.


청량산휴게소에서 올라왔던 길로 40m 거리에 이르면 왼쪽에 '얼음굴'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 방향 계곡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8~9분 거리에 이르면 오른쪽 절개지 바위구멍에서 찬 바람이 나오는 얼음굴이 있다.

 

얼음굴에서 북문터를 지나 25분 올라가면 '휴게소 1.3km, 공민왕당 0.3km, 축융봉 0.9km' 안내판이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


오른쪽 능선길로 들어가 10분 올라가면 무덤 1기가 나온다. 무덤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따라 10분 거리에 이르면 오른쪽 바위로 오르는 철계단이 나타난다. 20m 높이 철계단을 올라가면 옛날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다는 축융봉 정상이다.

 

축융봉에서 북쪽 계곡 건너로는 청량산을 이루는 12봉 중 11봉을 비롯해서 자소봉 아래 내청량사와 금탑봉 아래 외청량사인 응진전 등이 마치 동화 속의 집처럼 보인다.


낙동강 모습도 장인봉(의상봉)보다 더 넓게 조망된다. 남서족 멀리 안동 방면으로 흘러가는 낙동강과 안동호 일부가 조망된다. 올라온 코스를 역으로 내려와 안내판 삼거리에서 왕복 15분이면 공민왕당도 다녀올 수 있다.


청량산휴게소를 기점으로 얼음굴 - 북문 - 안내판 삼거리를 경유하여 축융봉을 다녀오는 거리는 약 4km로, 2시간30분이 소요된다.

 

 

등산코스

1) 광석나루 - 내청량사 - 정상 - 외청량사 - 이름실    (11km, 5:00소요)
2) 남면리 - 외청량사 - 김생굴 - 경일봉 - 청량산 - 내청량사 -오산당 - 광석나루터 - 광석


3) 광석나루 앞 청량교 건너 - 청량산휴게소 오백미터 전 입석 - 오산당 - 내청량사 - 정상 - 보살봉 - 김생굴 - 외청량사 - 입석 원점회귀코스 ( 약 4시간 )


4) 입석 - 응진전 - 어풍대 - 김생굴 - 자소봉 - 탁필봉 - 뒤실고개 - 자란봉 경유 -   정상 -   두들마 - 폭포슈퍼민박, 또는 뒤실고개 - 청량사 - 삼거리 (약 4km , 4시간 )

 

 

 

3/청량산: ♣청량산은 경북 봉화군 명호면에 위치한 높이 870.4m의 산으로 산의 형상이 바위봉우리로만 이루어진 듯한 기묘한 형태로 되어있고 사방 곳곳에 기암절벽이 있어 특이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산이다.

 

예로부터 많은 문인들의 수련장소로 유명하며 곳곳에 그 발자취가 상당히 많이 남아 산행을 겸한 역사 유적지로서도 유서가 깊은 산이다. 청량산에는 12봉우리(일명 六六峰)와 12대(臺), 8개의 동굴, 4곳의 우물 및 청량사, 응진전의 2개의 사찰과 퇴계 이황의 서당인 청량정사(오산당)가 있다.

 

4/청량산 개요:봉화읍에서 동남쪽으로 29km, 안동시에서 동북쪽으로 24Km 떨어진 청량산(870m)은 사람들의 손때가 묻을까 두려운 듯 다소곳이 숨어있다.

 

금탑봉을 비롯하여 아름다운 봉우리 12개, 8개의 동굴, 12개의 대와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가 세운 청량사를 비롯한 절터와 암자, 관창폭포 등 수많은 관광자원을 갖고 있다. 청량산도립공원 표석 뒤로 퇴계의 '청량산가'시비가 있으며, 청량산행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된다.

 

퇴계는 도산서당을 지을 때, 이곳 청량산과 현재의 도산서원 자리를 두고 끝까지 망설였을 만큼 청량산을 사랑하고 아꼈다고 한다. 퇴계 이황은 '청량산가'에서 "청량산6.6봉을 아는 이는 나와 흰 기러기 뿐이며 어부가 알까 하노라"하고 노래했다.

 

청량산은 퇴계 뿐만 아니라 원효, 의상, 김생, 최치원 등의 명사가 찾아와 수도했던 산이며, 그들의 이야기가 곳곳에 남아 전설처럼 전해온다. 퇴계의 청량산가에 나오는 6.6봉은 주봉인 장인봉을 비롯하여 외장인봉,선학봉,자란봉,자소봉,탁필봉,연적봉,연화봉,향로봉,경일봉,금탑봉,축융봉 등 12봉우리를 말하며, 모두 바위병풍을 두른 듯이 산 위에 솟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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